솔직과 떡값

2009. 2. 12. 16:04글쓰기/이 세상은 사각의 정글이 아니다!

솔직과 떡값

학생들에게 내준 리포트를 검사하다가 <사토라레>란 영화 감상문을 보았다. 내용도 그렇거니와 ‘사토라레’란 말 자체가 흥미로워서 비디오를 빌려 보았다.

‘사토라레’란 일정한 범위 내의 사람들에게 자기의 생각이 들리게 하는 특이한 존재들을 말한다. 이 말은 마음속의 생각이 너무나 강하여, 그 사념파(思念波)를 주위의 사람들이 듣게 된다는 뜻이다.

포스터

 

모토히로 카츠유키가 감독한 <사토라레(サトラレ: Satorare)>( 2001)

 

 

영화 전반부는 주로 사토라레의 특성을 담은 일상의 일들이 에피소드 적으로 가볍게 터치한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는 전반과는 사뭇 다르다. 즉, 사토라레인 주인공 켄이치가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의 마음을 들키면서 겪게 되는 ‘인간적 고뇌’와 그를 혼자 키운 ‘할머니의 손자에 대한 따스한 사랑’의 시선을 앵글이 쫓고 있다.

켄이치의 마음속은 늘 실시간으로 생중계가 되는 중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남들에게 늘 속내를 모두 들켜 버리고야 마는 사토라레로서 인간적 고뇌를 앓는 켄이치를 다르게 보지 않는다.

할머니는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다.

“켄이치는 다른 사람들보다 단지 조금 더 솔직할 뿐이에요.”

아래는 인터넷에 뜬 기사입니다.

“[특검 발표] 특검 "삼성떡값, 의혹은 있으나 흔적이 없다"… 모두 무혐의”

떡값이 대단히 큽니다. 뱃속이 우리 조선 땅 만큼 되나 봅니다. 말의 갈래와 조리를 따질 것도 없이 논리성이 결여된 예문입니다.

아무리 도덕과 정의가 인성의 변방으로 축출되었다하지만-, 대한의 최고 양심, 지도자라 불리는 이들로서 우리 같은 천한 백성들에게 정의와 양심을 아웃소싱해서야 쓰겠는지요. 저이들의 말과 저이들의 행동을 볼작시면 속에 대감이 몇이나 들어앉았는지 참말 알 수 없습니다.

예절, 의리, 청렴, 부끄러움, 즉 예의염치(禮義廉恥)가 없는 행태입니다. 자고로 ‘예의염치’란 국가의 근간입니다. 이른바 국가를 바치는 네 뼈대로 사유(四維)라고 합니다. 유(維)란 ‘벼리’입니다. 뼈대라는 뜻이지요.

관자(管子)는 목민(牧民)편에서 나라에는 네 벼리(四維)가 있다고 했다.

‘예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고,

의가 없으면 나라가 위태하고,

청렴이 없으면 나라가 전복되고,

치가 없으면 망한다’고 하였으니,

네 벼리 중, 그래 ‘염치(廉恥)’가 무서운 법입니다. 관자는 ‘염’을 악을 감추지 않는 것(不蔽惡)이요, ‘치’는 ‘굽은 것을 따르지 않는 행위(不從枉)’로 풀어놓았습니다. 지식인이 되어 양심을 굽혀 저리 염치없는 짓을 해서야 되겠는지요. 저들의 불순한 해바라기성 권력지향에 시나브로 풍화 작용하는 나라의 운명을 봅니다. “의혹은 있으나 흔적이 없다” 손가락 하나로 해를 가리려드는 모양새요, 코가 막힐 일입니다.

콧구멍 둘 마련하길 정녕 다행입니다. 도덕의 자살을 목전에 보고도 강 건너 불구경하는 자, 지식인이 아닙니다.

“是日也放聲大哭”을 되뇌고 싶습니다.

저런 이들 정녕 1류는 아니련마는, 1류라 아니하는 이가 없어 참 이상합니다.

솔직합시다!

안타까운 것은 저 “是日也放聲大哭”을 지은 위암 장지연(張志淵,1864~1921)선생이 현재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부에 올랐다는 사실입니다.(필자는 이에 대해 아는 바가 부족하여 말을 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