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라리 괴물怪物을 취取하리라>

2009. 2. 12. 16:54글쓰기/이 세상은 사각의 정글이 아니다!

「차라리 괴물怪物을 취取하리라」의 전문이다.

                                                          신채호

한 사람이 떡장사로 이득을 보았다면 온 동리에 떡방아 소리가 나고 동쪽에 있는 집이 술을 팔다가 실패하면 동쪽에 있는 집의 노인도 용수싸리나 대오리로 만든 둥글고 긴 통. 술이나 장을 거르는 데 쓴다를 떼어 들이어, 나아갈 때에 와~ 하다가 물러날 때에 같이 우르르 하는 사회가 어느 사회냐. 매우 창피하지만 우리 조선의 사회라고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삼국 중엽부터 고려 말까지 염불과 목탁이 형세를 얻어 제왕이나 평민을 물론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권하며,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권하여 ‘나무아미타불’하는 소리로 팔백년을 보내지 아니하였느냐. 조선 이래로 유교를 받듦에, 서적은 사서오경이나 그렇지 않으면 사서오경을 되풀이한 것뿐이며, 학술은 심心․성性․이理․기氣의 강론뿐이 아니었더냐. 이같이 단순하고 변화가 없는 사회가 어디 있느냐.

 

예수교를 믿어야 하겠다 하면, 세 마지기 밖에 안 되는 토지를 톡톡 팔아 교회당에 바치며, 정치운동을 한다 할 때에는 이발사가 이발관을 뜯어 가지고 덤비니, 이같이 부화뇌동하기를 즐기는 사회가 어디 있느냐. 개인도 사화와 같아 갑이라는 종교로 을이라는 종교를 고쳐 믿거나, 갑이라는 주의로 을이라는 주의에 이전할 때에, 반드시 주먹을 발끈 쥐고 얼굴에 핏대가 오르며 씩씩하는 숨소리에 맥박이 긴급하며, 심리상의 대혁명이 일어나 어제의 성스러운 스승이 오늘의 악마가 되어 형태가 없는 칼로 그 목을 끊으며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원수가 되어 소리 없는 총으로 그 전부를 도륙한 연후에야 새로운 삶을 개시함이 인류의 보편적인 일이거늘, 요즈음의 인물들은 그렇지도 않다.

 

공자를 독실하게 믿던 자가 이제야 예수를 믿지만 벌써 삼십 년 전의 예수교인과 같으며, 제왕의 충신이라고 스스로 기약하던 자가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존경하여 높이 받들지만, 마치 자기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민주의 혼을 배워가지고 온 것 같으며, 그러다가 돌연히 딴 경우가 되면 바울로(Paulus, 10?-67?)그리스도교의 사도使徒가 다시 안연(顔淵, 공자가 가장 아낀 제자)도 될 수 있으며, <단톤>이 다시 문천상(文天祥, 1236~1282, 중국 남송南宋 말기 정치가․시인으로 원나라 세조世祖쿠빌라이에 저항하며 충절을 굽히지 않고 3년간의 감옥생활 끝에 살해되었다)도 될 수 있으며, 바쿠닌(Mihail Aleksandrovich Bakunin, 1814~1876러시아 혁명가. 무정부주의와 인민주의의 지도자로 이탈리아․스위스․에스파냐의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혁명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의 제자가 카이제르(Kaiser, 빌헬름 1세를 말함인 듯 하다)의 시종도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무슨 사람이냐. 

 

그 중에 아주 도통한 사람은 삽시간에 애국자․비애국자, 종교가․비종교가, 민족주의자․비민족주의자의 동서남북상하의 여러 방면으로 몸을 나타내니 어디에 이런 사람이 있느냐.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찾아보면, 나는 없고 남만 있는 노예의 근성을 가진 까닭이다.

 

 

현대어법에 맞게 고치고 어려운 낱말을 풀이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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