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비대칭

2009. 2. 4. 11:44글쓰기/이 세상은 사각의 정글이 아니다!

시선의 비대칭

 

‘살인의 추억’이 요즈음 신문 지상(紙上)을 더럽힙니다.

간교, 사이코패스, 살인, 악마, -. 인간의 언어로 된 모든 흉악한 수식어를 동원하여도 해원(解寃)치 못할, 저 범인을 잡은 결정적 물적 증거가 폐쇄회로TV(CCTV)였다는군요.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니 하는, 첨단 문명의 힘을 실감합니다. 그래 ‘컴퓨토피아’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컴퓨토피아(computopia)’란, 컴퓨터(com-puter)와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로,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이룩되는 이상적인 사회’를 말합니다만, 사실 행간 속을 스치는 ‘인정 없는 사회에 대한 자조적(自嘲的)인 뉘앙스’도 짚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시선의 비대칭’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컴퓨터를 보는 시각과 컴퓨터가 우리는 보는 시각이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습니다. 영원히 시선이 어긋나는 불균형, ‘시선의 비대칭’입니다.

컴퓨터는 인간보다 백만 갑절을 더 기억한다지만, 인간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기입니다. 컴퓨터는 쇠로 되어 인정(人情), 즉 ‘인간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 ‘충(忠)’이라는 말은 알아도 ‘국가 따위에 충직함이란 행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충’이란 말의 완결성은 충을 알고 이를 바람직한 방법으로 충이 실현될 때 완성됩니다.

<이글 아이>라는 영화를 보면, 미국 국방부에서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이글 아이 프로젝트’를 은밀히 추진합니다. 이글 아이 프로젝트는 사회 모든 휴대폰과 CCTV를 감시하여 연쇄 검색으로 테러를 차단하는 신기술이지요. 일종의 국가 충성 고성능 컴퓨터로 세상을 조종하는 또 하나의 미국의 눈, '이글 아이'를 만든 셈입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인 컴퓨터는 오히려 국가체계를 흔듭니다. '이글 아이' 컴퓨터는 그것이 충이라 이해한 것입니다. 충이란 행동의 수원지는 말할 것도 없이 마음인데, 마음이 없는 컴퓨터와 마음이 있는 인간의 시선이 비대칭인 결과이지요.

이러한 시선의 비대칭을 공부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의양지학’과 ‘자득지학’이 바로 그것입니다. 공부에는 의양지학(依樣之學:모방)과 자득지학(自得之學:독창)이 있습니다. 의양지학은 머리에 넣으면 된다지만, 자득지학은 의양을 거쳐 스스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즉 ‘충(忠)’이라는 낱말의 뜻이 ‘국가 따위에 충직함이란 행동’임을 아는 것은 ‘의양’에 해당됩니다.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자득’입니다.

<이글 아이>로 비유하자면 의양지학에만 머무르는 것은 컴퓨터적 사고입니다. 충이라 학습된 지식체계가 기계적으로 입력된 상태일 뿐입니다. ‘자득지학’은 마음공부이니 당연히 충이 마음으로 내려와 여러 경우의 수를 보아가며 충을 하는 행위입니다. 당연히 의양지학과 자득지학의 충에 대한 시선이 비대칭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머리(뇌)에는 아픔을 느끼는 기관이 없답니다. 그래, 뇌수술은 환자가 정상적인 의식 상태에서 하는 경우가 있다고 책에 씌어 있더군요. 마음공부를 하려고, 자득지학을 하려고 글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공부를 하는 사람들, 시선이 금속성이어서야 되겠는지요.

 

 저 첫 문장에 놓인 저 이도 학교를 다니고 책도 보았을 터.

혹, 저 이의 공부 또한 의양지지학이 아닐는지요.

 

유비쿼터스(ubiquitous): 어디서나 어떤 기기로든 자유롭게 통신망에 접속하여 갖은 자료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있음. 또는 그런 환경. 국립국어원이 개설·운영하고 있는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를 통하여 ‘두루누리’로 순화하였다.(<국립 국어원>에서 발간한 ‘2004년 신어 자료집’에는 이렇게 정의하였다.)

네트워크(network): 랜(LAN)이나 모뎀 따위의 통신 설비를 갖춘 컴퓨터를 이용하여 서로 연결시켜 주는 조직이나 체계. ‘통신망’으로 순화.

이글 아이(eagle eye, 2008): ‘이글(eagle)’은 미국의 국장(國章), 아이(eye)는 눈. D.J. 카루소가 감독하고 스티븐 스필버그 등 할리우드 최강팀이 만들었다는 인공지능의 컴퓨터를 이용하려다 오히려 컴퓨터가 모든 장비를 컨트롤 하면서 국가에 위협을 초래한다는 미국 영화. 핸드폰, 현금지급기, 거리의 CCTV, 교통안내 LED사인보드, 신호등 등 우리들 주변의 전자장치와 시스템이 인간의 행동을 조종한다. 스필버그는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설 때, 공포에 떨며 핸드폰이나 PDA를 두려워하길 바란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