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3. 11:40ㆍ글쓰기/이 세상은 사각의 정글이 아니다!
이 글은 2008년 5월에 써 두었던 글입니다.
지지리와 삼류대학 1.
수업이 느지막이 있는 날이다.
그래 한적한 시간 전철에 몸을 맡긴 여유로움에 세상사는 긴장이 나른해진다.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흔들림, 바퀴와 레일의 마찰음, 어김없이 1-2분 간격으로 들리는 이름 모를 아가씨의 안내방송, 여기에 눈을 내리깔고는 겉잠을 청하는 맛이 제법이다.
“이번 역은 서초, 서초역입니다.… 다음 역은 교대역입니다.”
내릴 때가 된 것 같다. 무릎 위의 가방을 슬쩍 당기며 눈을 슬며시 뜬다.
서초에서 막 탄 두 여인이 말을 주고받으며 들어온다. 살짝 오월의 훈풍 같은 여인의 내음이 내 앞에 섰다.
“그래, 걔, 우리 애하고 한 반이었는데.”
40대 중반 쯤 됐음직한 여인이다. 베이지색 톤의 봄 버버리 차림. 허리는 맵시 있게 조였다. 긴 목에 슬쩍 동여맨 코발트빛이 짙게 감도는 스카프 위의 동그스름한 얼굴, 고운 눈매를 따라 슬쩍 그어진 두어줄 가선조차 각진 코를 중심으로 지적(知的)으로 자리했다. 한때는 꽤 미인이란 소리깨나 들었을 법한 여인이었다.
또래의 여유로운 몸집의 여인이 썩 자신 없다는 투로 말을 받는다.
“글쎄, 내가 알기로는 00대학 같다고 하던데. 글쎄-,”
말의 중동을 버버리 여인이 챈다.
“00대. 걔, 공부 지지리도 못 했네. 아니, 그런 삼류대학을 나와서 어따 써. 그래 걔 엄마가 거기 보냈대.”
“아이, 걔 엄마도…”
말끝을 “이번 역은 교대, 교대역입니다.… ”
안내 방송이 채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잠시 동안 서 있었다.
‘지지리’는 아주, 몹시, 지긋지긋하게, 매우 등의 뜻으로 부정적인 뜻을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이는 부사이다. ‘지지리 못난 놈’이나 ‘지지리도 재수가 없다’처럼, 듣자면 꽤나 불유쾌한 단어군에 속한다.
문제는 저 대학이 정녕 ‘지지리’라는 부사를 붙여야할만한 대학이냐이다. 이 좁은 나라에 4년제 대학이 200여개이니, 이 지지리를 서너 개 붙여도 될 만한 대학이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 빼고는 다 알지만. 문제는 저 대학명 앞에 정녕 지지리를 관형사처럼 붙여야할 만큼 지지리 못난 대학이냐는 것이다. 동의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미 20년 조금 못 미치는, 내가 고3담임할 때도 지지리 공부 못한 학생이 갈 대학은 아니었다. ‘00대’는 반에서 등수깨나 해야만 갈 수 있었고, 나도 저 대학을 보내려고 애 깨나 썼다. 더욱이 요즈음엔 시립에서 국립대학이 된 뒤로 그 위상이 자못 높아졌다. 그런데 ‘지지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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