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와 정시

2009. 1. 29. 16:04포스트 저서/못 다한 기인기사

홍경래와 정시

언젠가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 1862~1933:교육가이자 외교관으로 일본화폐 오천엔 권의 초상 인물임)가 쓴 『일본의 무사도』(생각의 나무, 2004)라는 책을 보고는 사무라이의 무사도 정신에 기가 질린 적이 있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의젓함을 잃지 않고 주군에 대한 충(忠)과 의(義)에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저들의 정신이 사뭇 부러웠다.

민중 혁명가인 홍경래와 정시. 그들이 만난 것은 순조(純祖) 11년인 신미년(1811년), 여름이 막바지에 다다른 7월이었다. 그때 홍경래가 마흔 둘이요, 정시는 그보다 세 살 많은 마흔다섯 해의 한참 인생을 살아갈 나이였다.

하지만 역사의 옳고 그름을 떠나 봉건국가에서 그들은 단지 적이었고, 정시에게 있어 홍경래는 반역도일 뿐이었다.

“내 머리는 자를지언정 이 관인은 주지 못한다.”

정시의 서늘하니 부릅뜬 눈과 붉은 선혈을 보며, 내 민족의 한 무인에게도 이러한 강개함을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의 이익만을 좇기에 바쁜 오늘날의 우리들, 아니 ‘충’과 ‘의’라는 낱말은 아예 태생부터 자연면역(自然免疫)된 대한국인들, 저 삼부자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려는지요.

아래 글은 2008.4.11일자 모 일간지 사설입니다. 새겨들을 말이기에 전문을 인용해 봅니다.

 

[사설] "돈만 벌면 된다"는 청소년이 미(美)·중(中)·일(日)보다 많다니

일본청소년연구소가 한국 미국 일본 중국의 고교생 1000~1500명씩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부자가 되는 게 성공한 인생'이라고 답한 학생이 한국은 50.4%로 일본 33%, 중국 27%, 미국 22.1%보다 훨씬 많았다. '돈을 벌기 위해선 어떤 수단을 써도 괜찮다'는 답도 한국은 23.3%로 미국 21.2%, 일본 13.4%, 중국 5.6%보다 높았다. '돈으로 권력을 살 수 있다'는 대답 역시 미국 일본 중국은 30% 안팎이었는데 한국은 54.3%나 됐다.

우리 청소년들 생각이 왜 이 지경이 돼버렸는지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최고 재벌이 불법으로 비자금을 만들어 불법을 수사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매수하러 다녔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재벌 총수가 아들 복수를 하겠다며 어설픈 '주먹' 흉내를 내다 철창신세를 진 게 엊그제 일이다. 학력 위조, 논문 조작 사건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온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차떼기로 뭘 얼마나 주고받았다는 게 먼 옛날의 일이 아니다. 청소년들이 이걸 보면서 '세상이 다 그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뭘 하더라도 돈만 모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면 사회라는 공동체를 움직이는 기본적 도덕과 규칙, 윤리가 작동을 멈췄다는 뜻이다. 재작년 한국청소년개발원이 한·중·일 3국 청소년에게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봤을 때 '앞장서 싸우겠다'는 대답이 일본은 41.1%, 중국 14.4%였는데 한국은 10.2%에 불과했다. '외국으로 나가겠다'는 대답은 일본 1.7%, 중국 2.3%, 한국 10.4%였다. 장·차관이나 국회의원 가운데 도저히 머리가 끄덕여지지 않는 이유로 입영(入營) 면제를 받았다는 사람이 숱한 게 우리나라다. 선진국에서는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대한민국 미래는 청소년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떻게 커나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돈도 소중하지만 세상엔 돈보다 귀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분명 있는 법이다. 돈을 버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버느냐가 중요하다는 상식이 살아있는 사회가 건강한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이런 진실을 깨닫게 하려면 사회 지도층 어른들이 실천과 모범으로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 <조선일보>

 

전세계 제일의 교육열을 자랑한다는 대한민국, 82%인 경이로운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지식인 국가 대한민국, 기가 막힌 이 현실에 그저 ‘콧구멍 두 개 잘 마련했다’고 안도의 한숨이나 돌려야 하는지요.

 

다시 정시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대는 듯 합니다만,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의 글이 언뜻 스칩니다. 다산 선생이 아들에게 준, <학연에게 답하노라(答淵兒)>라는 편지글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다산 선생은 천하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는데 ‘하나는 옳고 그름에 대한 저울(一是非之衡)’이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대한 저울(一利害之衡)’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 두 가지 저울에서 ‘네 가지 큰 등급이 나온다(生出四大級)’고 합니다. 그 등급은 이렇습니다.

 

첫째 등급, 옳음을 지켜서는 이로움을 얻는 것이 가장 으뜸이요(守是而獲利者太上也),

둘째 등급, 옳음을 지키다가 해로움을 입는 것이요(守是而取害也),

셋째 등급, 그름을 따라가서 이로움을 얻는 것이요(趨非而獲利也),

넷째 등급, 그름을 따르다가 해로움을 입는 것이다(趨非而取害也).

 

정시는 이 중 둘째에 해당되겠습다만, 그의 사후 삶까지 다잡아 따진다면 결코 첫째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듯합니다. 덧붙여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지금처럼 산다면 분명 넷째 등급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뻔한 말도 하고 싶습니다.

 

홍경래(洪景來, 1771~1812):19세기 초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난의 최고 지도자이다. 그가 이끈 군사력과 봉기 이념에 한계는 있었지만, 기층사회에서 성장한 인물로서 대규모의 항쟁을 주도한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정시(鄭蓍,1768∼1811): 1799년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을 거쳐 1811년 가산군수로 임명되었다. 이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 민심이 흉흉하고 군내가 떠들썩하며 백성들이 피난가려 하자, 정시는 홀로 말을 타고 군내를 돌아다니면서 피난 가는 것을 중지시켰다. 홍경래군이 가산 관아에 돌입하여, 살고 싶으면 인부(印符)와 보화를 내놓고 항복문서를 쓰라고 하자, ‘내 명이 다하기 전에는 항복할 수 없다. 속히 나를 죽여라.’ 하고, 꾸짖다가 칼에 맞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