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2009. 1. 29. 15:36글쓰기/글쓰기는 연애이다

운명

연초라서 그런지 운수니 ‘운명(運命:運數)’이니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애꿎게 손바닥에 접혀진 주름을 보며 명줄이 짧으니기니, 어쩌고저쩌고도 한다.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담헌서(湛軒書)』「내집 2권(內集 卷二)」‘사론(史論)’을 보면 운명에 대한 이런 글이 있다. (‘사론’은 주로 동진시대(東晋時代)의 인물에 대한 평을 적어 놓은 글이다.)

곽박이 안함을 위해 점을 쳐보려고 하자, 안함이 말하였다.

“수명이란 하늘에 달려 있고, 지위란 사람에게 매여 있는 것이니, 자기의 몸을 닦아도 하늘이 돌봐주지 않는 것은 운명이다. 바른 도리를 지켜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은 태어난 본성이라. 저에게는 정해진 성명(性命)이 있으니, 시ㆍ귀를 괜히 수고롭게 하지 말라(年在天, 位在人, 修己而天不與者, 命也. 守道而人不知者, 性也. 自有性命, 無勞蓍龜).”

곽박(郭璞)은 감여술로 안함(顔含)은 학자로 이름난 진 나라 때 사람이다.

‘감여술(堪輿術)’이란 하늘과 땅, 음양설에 의하여 집터나 묘 자리를 잡거나 또는 풍수지리에 관한 학문이다. ‘시ㆍ귀(蓍龜)란 점치는데 쓰이는 시초와 거북을 말한다. 설명할 것도 없이, 곽박이 안함을 위해 점괘를 보려하자, 안함은 정해진 운수이니 부질없는 짓하지 말라는 뜻이다. 안함의 말을 되 친다면, ‘그저 직수굿이 온 정성을 다할 뿐’이란 의사와 크게 멀지는 않으리라.

한 옥편을 찾아보니 운명이란 ‘사람에게 닥쳐오는 길흉화복의 사정’이라고 간단히 적어 놓았다. 운명의 ‘운(運)’이란 글자는 ‘돌 운’이다. ‘길흉화복’이 빙빙 돌다는 의미이다. 운전무이(運轉亡已)라 하였다. ‘우주의 만물이 늘 운행 변전하여 잠시도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연의 섭리는 길흉도 화복도 제자리에 멈추어 마냥 있는 것은 없다.

비운의 삶을 산 이를 인용함은 온당치 않지만, 우리가 잘 아는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思悼世子,1735~1762)는 겨우 2세에 세자 책봉 되었으니, 포대기에서 이미 만인의 추앙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27세에 뒤주 속에 갇혀 철저하게 비극적이라는 말에 맞는 죽음을 한다. 또 사도세자는 10세에 동갑내기 헌경왕후(獻敬王后:혜경궁 홍씨,1735~1815)와 결혼하였으니, 조선 왕들 중 최연소 결혼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길흉이 저와 같으니 오늘의 삶을 내 운명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 않은가.

그래 우리들은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으로,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불행이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갖아야한다. 동서남북이야 변하지 않겠지만, 상하좌우야 내 위치에 따라 변하는 것이 정한 이치 아니던가.

안함의 저 말을 나도 믿는다.

아니 굳건히 믿으려 노력한다. 운명을 결정하는 인자가 또 무엇이 있으랴. 아니, 있다고 한들 나에게는 없으니, 믿을 것은 저뿐이다. ‘쇠뿔도 각각이요, 염주도 몫몫’이라고 했다. 무엇이나 다 제각각 맡은 몫이 있다하였으니 ‘힘닿는 내내 쇠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공력’으로 열심히 사는 수가 있지 않겠는가. 운명을 하늘의 뜻만으로 돌리기엔 한 번 살다 가는 내 인생이 너무 가엾지 않은가.

매사는 간주인(看主人)이라 했다. 무슨 일이든 주인이 알아서 처리하는 법, 손이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것이 아니다. 일곱을 셋으로 짐작할지라도 내 운명의 주인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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