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 말아야할 상수(常數) 효

2009. 1. 31. 11:35글쓰기/글쓰기는 연애이다

변치 말아야할 상수(常數) 효

 

사람 사는 셈법이 다 다르다지만, 변치 말아야할 상수(常數)는 있는 법입니다. 윤리니, 도덕이니, 정의가 그러하지요. 그리고 그 중, 다 없어져도 마지막으로 남을 것은 ‘효’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겁니다.

‘효(孝)’자는 ‘노인(老)’과 ‘자식(子)’의 합자입니다. 풀이할 것도 없이 ‘아들이 노인을 잘 봉양 한다’는 의미이지요. 동서양을 불문하고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이야, 인간으로서의 기본이지요. 시대가 변하여 효의 형식과 규범은 변한다해도 자기에게 생명을 준 부모에 대한 근본도리를 망각해서야 쓰겠습니까.

‘동방의 예의지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는 일찍이 이 효에 대한 문헌기록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신라의 경우는 지금의 대학격인 국학(國學)에서 『효경』 이 필수과목이었지요. 『삼국사기』에 보이는 <향덕(向德)>, <효녀 지은(知恩)>, <설씨녀(薛氏女)> 등이 모두 효에 관련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이 효는 고려 말 『명심보감』을 통하여 더욱 구체화합니다. 조선에 들어와서도 『이륜행실도』,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오륜행실도』 등이 발간, 반포되었습니다. 그래 어머니의 악창을 치료하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드렸다는 향덕(向德), 아버지의 문을 뜨게 하기 위하여 제 몸을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의 제물이 된 심청 등을, 효의 표본으로 까지 이해하였으니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의 효에 대한 말씀 정도면 되지 않을까싶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자(慈)이고, 자녀가 부모를 잘 받드는 것이 효(孝)이다. 효자의 도리는 천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모든 선(善)의 으뜸이 된다.”

효 이야기가 나왔으니 불효에 대한 언급 한 마디 합니다.

혹 ‘효경(梟獍)’이란 말을 들어 보았는지요.

‘효(梟)’는 ‘올빼미 효, 목매달 교’ 등으로 쓰입니다. 새조(鳥)와 나무목(木)으로 된 글자로 ‘새를 잡아서 나무에 매어 달다’의 뜻입니다. 이 올빼미는 흉악하게도 어미 새를 잡아먹기 때문이랍니다.

‘경(獍)’은 ‘맹수 이름 경’입니다. 이 짐승은 범을 닮았으며 몸집이 작은데 제 아비를 잡아먹는다는군요. 그래 지금도 배은망덕하고 흉악한 사람을 비유하여 ‘효경’이라 하지요. 효자 소리는 못 들을망정, 저 소리를 듣는다면야 어찌 인두겁을 썼다고 하겠습니까.

 

효의 대상에 대한 흥미로운 결과가 있어 하나 소개합니다.

효의 대상을 조사해보니 아들과 아버지가 35%, 아들과 어머니가 43%, 딸과 아버지가 8%, 딸과 어머니가 6%로 나타났습니다.(차준구, 「한국 전설에 나타난 효의 문화정신의학적 고찰」, 『신경정신의학』18-1(별책), 1979, p.82.) 이 논문에서는 효를 심리학적으로 살펴 효의 1차적 동기를 근친상간 즉, 이성(異性) 부모에 대한 사랑과 그 죄의식에 의한 자기처벌적인 요소인 오이디푸스콤플렉스[Oedipus complex]로 설명하고 있지요. 하지만 서양에서도 그렇듯 동양에서 이 ‘외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기에 꼭 맞다고 확언하기는 어렵습니다. 더욱이 효를 동양 사상의 중심 덕목이라 여기기에 예로부터 면면히 내려오던 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이 글에서도 그렇지만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아도 아들이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지요. 이러한 것은 서양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치마폭 아이인 ‘마마보이’라는 말은 있지만, ‘파더걸’은 없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하지 않을까합니다.

 

오이디푸스콤플렉스 [Oedipus complex]: 그리스 신화 오이디푸스에서 딴 말로서 S.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서 쓴 용어이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에피카스테)의 아들인데 숙명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의 왕이 되었다. 어머니인 줄 모르고 결혼한 그들은 그 사실을 알자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기 눈을 뺀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경향은 남근기(男根期:3∼5세)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며 잠재기(潛在期)에는 억압된다고 한다. ‘아버지처럼 자유롭게 어머니를 사랑하고 싶다’는 원망(願望)은 ‘아버지와 같이 되고 싶다’는 원망으로 변하여 부친과의 동일시(同一視)가 이루어지며 여기에서 초자아(超自我)가 형성된다.

그러나 말리노프스키 [1884 ~ 1942]는 <미래 사회의 성과 억압>에서 “아이는 아버지에 대해서 애증병존(愛憎竝存:ambivalence)을 보이지만 이것은 프로이트가 지적한 어머니에 대한 아이의 성적욕망이나 어머니에게 접근하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질투심에 연유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보호자의 역할과 통치자의 역할을 모두 소유한 사람에 대한 아이의 원래적인 반응을 뜻한다.”라고 한다. ‘오이디푸스콤플렉스’가 최고의 진리라고 믿는 사람들은 한 번쯤 읽어 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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