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조심, 글 조심

2009. 2. 3. 16:33글쓰기/글쓰기는 연애이다

말 조심, 글 조심

 

조선은 문치(文治)의 나라답게 엄밀하고 냉정해야할 송사에 종종 글 잘하는 이의 시가 껴들곤 하였습니다.

아래는 이훈종의 『거시기』(교문사, 1988, 26쪽)에 보이는 ‘고소도 하기 나름’이란 글을 간추린 내용인데, 시에 의해 죄가 있기도 없기도 합니다.

들에서 일을 하던 두 사람이 다투다가 이것이 빌미가 되어 한 사람이 죽었다. 그래 살인죄로 고소를 당한 사람이 글 잘하는 사람을 찾아와 변명을 해달라고 하자 이렇게 써줬다 한다.

烏飛於二月 梨落乎九月 오비어이월 이락호구월

鳥之罪耶 病之故耶 조지죄야 병지고야

해석은 이렇습니다.

「까마귀는 2월에 날고 배는 9월에 떨어졌으니,

까마귀의 죄인가요? 병 때문인가요?」

이 글을 읽은 원님, 무죄를 선고하여 석방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살인죄로 고발을 당한 자가 풀려나서는 고맙다는 인사도 않았나 봅니다. 글을 써준 이가 괘씸해서인지 이번엔 이런 시를 원님에게 넣었다는군요.

以杖打帳 帳不穿 破器 이장타장 장불천 파기

以刀割水 水不痕 魚死 이도할수 수불랑 어사

해석해 볼까요.

「몽둥이로 장막을 치니 장막은 뚫어지지 않되 그릇은 깨지고,

칼로 물을 베니 물에는 자국이 없지만서도 고기는 죽는구나.」

이 글을 본 원님, 풀어준 사람을 다시 잡아드렸다는군요.

이러한 예들은 허다하게 찾을 수 있으니, 이제나 저제나 어른들이 ‘말 조심, 글 조심’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말에 관한 고시조 한 편 켵에 놓습니다.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모름이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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