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다.

2008. 12. 1. 13:25학생들의 글, 리포트/학생들의 글과 리포트

 

 

 

 

 

<실용작문> 시간에 제출한 서울교육대학교 박00학생의 글입니다.

그림과 글쓰기를 접목한 것인데, 그림의 이면을 따라간 상상력과 재치있는 표현이 돋보이는 글입니다.

 

 


[사건명] 

야묘도추 (野猫盜雛)

: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다.


때는, 1793년 3월 25일 오후 세 시경.

따사로운 햇살이 깔깔대는 완연한 봄.

김 생원네 마당 한 구석을 떡하니 차지한 살구나무에

꽃봉오리들이 앞 다투어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다.

평온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이 오후의 평화를 깨는 놈이 있었으니…


김 생원)

 “이 놈의 들 고양이, 잡히기만 해봐라! 난 마루에 걸터앉아서 자리 짜는 중이었어. 아 요즘 한참 자리 짜기에 재미를 붙였거든. 양반이면 다 글만 읽는 단가? 자리 짜기 하면서 무료함도 달래고, 완성되면 갖다 팔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

아, 이야기가 딴 데로 샜는데 어쨌든 간에 나는 자리를 짜면서 며칠 전에 태어난 병아리 새끼들이랑 그 어미 닭이 마당에서 놀고 있는 걸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이 말이야. 한 주먹에 들어옴직한 그 자그마한 녀석들이 어찌나 귀엽던지. 아 그런데 며칠 전부턴가 계속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고양이란 놈이 오늘도 대문 앞에서 얼쩡대는 거야. 맨날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 근데 이 놈이 어느 순간 마당에 뛰어들어 오더니 병아리를 하나 물고서 냅다 도망가는 거야! 옆에 있던 담뱃대를 집어들고 그 놈을 잡아야한다는 생각 하나로 몸까지 달려가면서 손을 뻗었는데 놓쳐버렸지 뭐야? 그 고양이 높은 힐끗 쳐다보는 여유까지 내비치고 한껏 약을 올리고 가 버렸어. 머리에 쓰고 있던 망건이 굴러 떨어지고, 자리틀도 마당에 떨어져서 두 동강이 났어. 그 소동이 있고 사흘이 지났는데도 그 때 다친 엉덩이가 회복이 안 되어서 집에 누워만 있어. 그나마 소일거리 하던 자리짜기도 자리틀이 없어 못하는 형편이니, 안사람 바가지 긁어 대는 소리가 날로 심해지고 있어. 이게 다 그 고양이 놈 때문이지 뭐야!”


김 생원 부인)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성질이 나! 들 고양이 때문이냐고? 천만에. 바깥 양반 때문이야. 그 양반 하는 일은 왜 그렇게 답답하고 이해 안 가는 것만 골라 하는지, 원. 아니, 그깟 병아리 한 마리 없어지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몸을 날리느냔 말이야. 나이 생각을 해야지. 그 나이에 한 번 넘어져도 회복하기가 쉽지 않은데, 고 병아리 구하겠다고 무턱대고 몸을 날리면 어떻게 해? 사람이 착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니까.”


암탉 꼬꼬)

“날이 좋아서 자식들과 마당을 거닐고 있었어요. 태어난 지 이주일도 안 된 귀여운 내 새끼들에게 지렁이를 물어다주고, 그것을 먹는 걸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었죠. 새끼들이 먹는 걸 보니 나는 안 먹어도 배가 불렀어요. 또 어디 지렁이가 없나 살펴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고양이 녀석이 불쑥 뛰어 들어오더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지옥엽 내 새끼 하나를 물고 줄행랑친 거예요. 나는 오로지 내 새끼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평소에는 그 놈 수염 한 올만 봐도 덜덜 떨었는데 그 때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으니까요. 날개를 퍼덕이며 정신없이 쫓아갔지만 허사였어요. 불쌍한 내 새끼…….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삐약삐약’ 잘도 노래 부르던 네가 아직 눈에 선하구나.


눈 앞에서 자식을 잃고, 눈물로 하루하루를 지새는 엄마 닭.

오늘도 그녀는 먼저 간 자식을 잊지 못해 시 한편을 낮게 읊조린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아른거린다.

열 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퍼덕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 정지용 「유리창1」中



* 한 낮에,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긍재 김득신의 그림 속 등장인물 각각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추론해 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