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론

2008. 10. 5. 14:36방송대/고전소설론

꽤 오래간만에 방송대 강의를 나갔습니다.

'주경야독' 혹은 '만학'을 실천하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수업을 들으시는 마음결이 매우 곱다고 느꼈습니다.

수업을 하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8시간의 강의보다는 듣는 것이 더욱 고역이란 점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나폴레옹이 말했지요. '우리 삶의 비장의 무기가 있다. 그것은 '꿈'이다'라고 말입니다.

비장의 무기가 필요하신 분들은 오늘 '꿈'을 한 번 꾸어보세요.


아래는 허균의 <유재론(遺才論)>과 <누실명(陋室銘)>입니다.
<유재론(遺才論)>은 국가의 모순된 제도에 의한 인간 차별의 문제점. 바람직한 인재 등용의 자세를 논한 글이고 <누실명(陋室銘)>은 누추한 방에서 서적에 묻혀사는 개결한 선비의 모습입니다. 정녕 '허균의 이러한 글과 삶이 일치하는지?' 또 오늘날 우리의 사회에 비추어 '허균'은 어떠한 이인지 여러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라를 경영(經營)하는 자와, 함께 천직(天職)을 다스릴 자는 인재(人才)가 아니면 될 수 없다. 하늘이 인재를 내는 것은 원래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인재를 내는 것은 고귀한 집이라 하여 그 부명(賦命)을 넉넉하게 하지 않고 미천한 집이라 하여 그 품부(稟賦)를 아끼지 않는다. 까닭에 옛날 선철들은 그럴 줄을 알고 인재를 초야(草野)에서도 구했으며, 혹 항오(行伍)에서 뽑았고(병사의 대열에서도 뽑아냈고), 혹은 패전하여 항복한 적장을 발탁(拔擢)하기도 하였다. 혹은 도둑 무리를 들어 올리고, 혹은 창고지기를 등용하였다. 쓴 것이 다 알맞았고 쓰임을 당한 자도 각자 가진 재주를 펼쳤다. 나라가 복을 받고 다스림이 날로 높아진 것은 이 방법을 쓴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천하의 큼으로써도 그 인재를 혹 빠뜨릴까 오히려 염려하였다. 근심해서 옆으로 앉자 생각하고 밥 먹을 때에도 탄식하였다.


그런데 어찌해서 산림(山林)과 초택(抄擇)에 보배를 품고도 팔지 못하는 자가 흔하게 있으며, 영걸찬 인재(人才)로서 낮은 자리에 침체해서 그 포부를 끝내 시험하지 못하는 자가 또한 많이 있는 것인가. 참으로 인재를 죄다 구하기도 어렵고, 다 쓰고도 또한 어렵다. 우리나라는 지역이 좁으니 인재가 드물게 나서, 대개 예부터 걱정하였다. 그리고 이조(李朝)에 들어와서는 사람을 쓰는 깃이 더구나 좁다. 세족(世族)으로서 명망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높은 벼슬에는 통할 수 없었고, 바위 구멍, 띠풀 지붕 밑에 사는 선비는 비록 기이한 재주가 있어도 억울하게 쓰이지 못한다. 과거 출신이 아니면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없으며, 비록 덕업(德業)이 훌륭한 자라도 경상(卿相)에는 오르지 못한다.


하늘이 재주를 내어 주는 것은 고른데, 세족과 과거로써 한정하니 항상 인재가 모자람을 병통으로 여기게 됨도 당연하다. 예부터 지금까지는 오랜 시일이고, 세상이 넓기도 하나, 서얼(庶孼)이라 하여 그 어진 이를 버리고, 어미가 개가(改嫁)했다. 그 인재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어머니가 천하거나 개가했으면 그 자손은 아울러 벼슬길에 충수되지 못한다. 변변찮은 나라로서, 두 오랑캐의 사이에 끼어 있으니, 모든 인재가 나의 쓰임으로 되지 않을까 염려해도 오히려 나랏일이 이룩되기를 점칠 수 없다. 그런데 도리어 그 길을 막고는 이에 자탄하기를


"인재가 없다. 인재가 없어."


한다. 이것이야말로 월남(越南)으로 가면서 수레를 북쪽으로 돌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런 것은 이웃나라에게 알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은 이웃나라에 알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부인네가 원한을 품어도 하늘은 그들을 위해 슬퍼하는데 하물며 원망하는 남정(男丁)네와 홀어미들이 나라 안에 반이 넘으니 화평한 기운을 이루는 것은 또한 어려우리라. 옛날의 어진 인재는 대부분 미천한 데에서 많이 나왔다. 그 때에 만약 지금 우리나라와 같은 법을 썼더라면 법문정이 정승으로 되어서 공업(功業)을 세울 수 없었을 것이고, 진관, 반양귀는 강직한 신하(直臣)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마양저와 위청 같은 장수도, 왕부(王府)같은 문장(文章)도 끝내 세상에 쓰이지 못했을 것이다.


하늘이 낳아 주는 것을 사람이 그것을 버리니 이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늘을 거스르면서, 하늘에 기도하여 명수(命數)를 영원하게 한 자는 없다. 나라를 경영하는 자가 하늘을 받들어서 행하면 큰 명수도 또한 맞이할 수가 있을 것이다.

 

《陋室銘》

 

남쪽으로 두 개의 창문이 있는 손바닥만한 방 안

한 낮의 햇볕 내려 쪼이니 밝고도 따뜻하다

집에 벽은 있으나 책만 그득하고

낡은 베잠방이 하나 걸친 이 몸

예전 술 심부름하던 선비와 짝이 되었네

차 한 사발 마시고 향 한 가치 피워 두고

벼슬 버리고 묻혀 살며 천지 고금을 마음대로 넘나든다

사람들은 누추한 방에서 어떻게 사나 하지만

내 둘러보니 신선사는 곳이 바로 여기로다

마음과 몸 편안한데 누가 더럽다 하는가

참으로 더러운 것은 몸과 명예가 썩어 버린 것

옛 현인도 지게문을 쑥대로 엮어 살았고
옛 시인도 떼남집에서 살았다네
군자가 사는 곳을 어찌 누추하다 하는가 

'방송대 > 고전소설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길동전 자료  (0) 2008.10.06
신재효론  (0) 2008.10.05
박지원론  (0) 2008.10.05
김만중론  (0) 2008.10.05
작가론/김시습론  (0) 2008.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