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26. 16:30ㆍ연암 산책/연암에 관한 글
아버지 생각날 젠 우리 형님 보았다네
아래 시는 「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 연암이 돌아가신 형님(박희원)을 생각하여 지음」으로 세상을 떠난 형님을 그리며 지은 것이다.
我兄顔髮曾誰似 내 형님의 모습이 꼭 누구와 닮았던고
每憶先君看我兄 아버지 생각날 젠 우리 형님 보았다네.
今日思兄何處見 오늘, 생각나는 형님 어데서 본단 말가
自將巾袂映溪行 의관을 갖춰 입고 시냇가로 달려가네.
여기서도 연암의 뭉클한 인간미를 엿볼 수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꼭 닮았던 형, 그래서 아버지가 그리우면 형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연암, 하지만 이제 그 형님조차 이승을 하직하였다. 연암은 이제 혹 자기의 얼굴에서 형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시냇가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박희원은 후사가 없어 연암의 맏아들 종의宗儀, 1766~1815가 양자하였다. 연암은 4남매 중, 막내였다. 맏이는 희원, 둘째는 이현모(李顯模, 1729~1812)의 부인 박씨(1729~1771), 셋째는 서중수(徐重修)의 부인 박씨(1733~1809)이다.
가슴 뭉클한 동기간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연암이니 시집와서 평생을 가난과 살다간 그의 아내에 대한 마음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종신토록 형형한 눈길, 노기 띤 숨 몰아쉬며, 바람살 눈살 몰아치는 조선후기를 허랑 허랑 걸어간 연암이었다. 잔재미라곤 없는 사내라지만, 이러한 속정마저 없었다면 그의 삶은 어떠하였을까?
이런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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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 서간집인 '연암선생서간첩'(燕巖先生書簡帖)이 서울대박물관 소장품에서 발굴됐다. 반초서체 친필로 연암 편지는 총 30통이 수록되어 있다.//문화부기사참조/문화/2005.6.2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