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산책 (1)

2008. 9. 19. 16:12연암 산책/연암에 관한 글

새벽달은 누이의 눈썹과 같구나


                               간호윤


고전(古典)이란 십대(十)를 전함직 한 말(口)을 기록한 책(典)을 말한다.

우리 고소설 작가 중, 저러한 고전 작가로 세계 대문호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이가 연암 박지원이다.

『리더의 공부산책』‘한국 고소설’의 들머리를 연암으로부터 시작함은 저러한 연유에서이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인물이다.

그런데도 연암의 명성(?)에 걸맞게 ‘연암’이란 두 글자는 요즈음 자주 언론에 오르내린다. 연암에 관한 글과 책이 어찌나 많은지 모은 것만도 내 책장의 서너 칸은 충분하다. 허나 그의 소설 <허생>은 교과서에까지 실려 있고, 수많은 학위논문과 글들이 있지만, 영 저 이와는 딴판인 듯하다. 많은 책과 글에서 연암을 강골한, 혹은 풍자와 비꼼, 골계 따위로만 읽어내려 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줄기차게 연암을 입에 올리며 각종 시험문제에 자주 나타나 괴롭힌다고 원성이 높고, 학자들은 저마다 제 논문을 위해, 그리고 몇몇은 저 이의 이름을 팔아 제 명성 챙기기만 급급하다.


두 어 차례에 걸쳐 연재할 터이니 먼저 연암과 나의 만남부터 소개하는 것으로 말머리를 터보자.

이제는 고인이 되신 선생님을 찾았을 때였다.

선생님께서는 내 푼수를 푼푼히 여기지 않으시던 터, “그래 자네 아는 사람이 누군가?”하고 차갑게 물으셨다. 나는 생각도 없이 냉큼 “연암 박지원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이유인즉, 고전문학이야 내 성정으로 미루어 일찌감치 전공으로 택한 터였고, 연암은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하면서 괜찮은, 조선의 소설가였기 때문이었다.

 연암을 처음 만난 것이 그러니까 20년하고도 손가락 몇을 더 접어야 할 그때, 꼬마둥이 국문학도 시절이었다. 제대로 글눈조차 뜨지 못한 때였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되게 그 이가 좋았던지 연암소설에 관한 글을 괴발개발 썼다. 연암이 누군지도 모르는 착시현상에서 졸업을 위한 요식 행위로 두어 권 연암에 관한 논문을 선집한 책을 놓고 짜깁기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딱히 글이라 할 것도 없었다.

선생님은 “허허”하고 나를 한참 쳐다보셨다.

선생님의 가소로움이 얼마나 크셨는지는 후일 알았다. 된통 혼쭐났다.

 

각설하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나는 그만 연암이라는 중세의 사내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나는 연암을 알려고 코를 들이대고는 “킁킁” 냄새를 맡기도 하고 그의 글을 품속에 안고는 몇 날 며칠 잠도 청해 보았으나 모두 도로였다. 나는 좀처럼 그의 글 문간조차 들어서지 못하였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나는 저 이의 글 문간만 맴돌 뿐이다.

그래 연암이 마음을 도슬러 잡고 먹을 갈아 묵향(墨香) 속에 넣어 둔 뜻을 세세히 그려내지 못 하고 연암 글을 한 눈에 꿰는 감식안도 없다. 그저 연암이라는 사내가 좋아 쓰는 글이다. 허나 비록 심안(心眼)이 비좁고 깜냥으론 여의치 않다손 치더라도 진정성만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독자제현의 질정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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