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소설논쟁(유양잡조 사건:성종)(3)

2008. 8. 7. 17:01고소설 백과사전/고소설사 4대 사건

 

『유양잡조』는 중국 당나라 때 단성식段成式(?~863)이 지은 책인데 이상한 사건,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도서圖書․의식衣食․풍습風習․인사人事 등 온갖 사항에 관한 것을 탁월한 문장으로 흥미있게 기술하였다. 당나라 때의 사회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가 되며, 또한 고증적인 내용은 문학이나 역사연구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그런데 이 책을 두고 김심 등이 주해하기를 거부한 이유는 이렇다.


“신등은 제왕의 학문은 마땅히 경사에 마음을 두어 수신제가하고 치국평천하하는 요점과 치란과 득실의 가치를 강구할 뿐이고 이 밖의 것은 모두 치도에 무익하고 유학에 방해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극돈 등이 어찌 『유양잡조(酉陽雜俎)』와 『당송시화(唐宋詩話)』 등이 괴탄하고 불경한 말과 부화하고 극적인 말로 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반드시 진상하는 것입니까? … 이와 같은 괴탄하고 희극적인 책은 전하께서 음란하고 방탕한 소리나 미색과 같이 멀리 해야 되고 내부에 비장하여 밤늦게 읽는 자료로 삼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청컨대 위의 여러 책을 외부의 장서로 넘겨주어 성상께서 심성을 기르는 공력에 보탬이 되게 하시고, 인신들이 아첨하는 길을 막으소서(臣等竊惟帝王之學當潛心經史 以講究修齊治平之要 治亂得失之跡耳 外此皆無益於治道 而有妨於聖學 克墩等豈不知 雜俎 詩話等書 爲怪誕不經之說 浮華戱劇之詞 而必進於上者 … 若此怪誕戱劇之書 殿下當如淫聲美色而遠之 不宜爲內府秘藏 以資乙夜之覽 請將前項諸書出付外藏 以益聖上養心之功 以杜人臣獻諛之路).”1)


음란하고 방탕한 소리[淫聲]나 미색美色. 소설을 배척하는 메카니즘(mechanism)으로서 꽤 힘깨나 썼던 용어들 아닌가. 이는 병리학적病理學的 징후를 들이대며 소설류를 질병으로 몰아붙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보겠다.

첫째로 여기서 김심 등은 『유양잡조』 등이 ‘치도治道에 무익하고 성학聖學에 방해’가 된다라고 하여 그 한계를 분명하게 하였다. 즉 임금에게만 방해가 된다는 것이지 모두에게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무익하고 폐해가 크다면 모든 책을 수거하여 폐기하지 왜 ‘책을 외방에 내어 보내’ 시속을 흐리게 하려는 것인가?

둘째로 이러한 책을 간행하여 바치는 것이 ‘인신들이 아첨하는 길’인가?

셋째로 이 글에 대하여 성종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좀 길지만 이해를 위해 살펴보겠다.


“전교하기를, ‘그대들이 말한 바와 같이 『유양잡조』 등의 책이 괴탄하고 불경하다면 『국풍(國風)』과 『좌전(左傳)』에 실린 것들은 모두 순정한 것인가? 근래에 인쇄하여 반포한 『사문유취(事文類聚)』 또한 이와 같은 일들이 실려 있지 아니한가? 만약 임금이 이러한 책들을 보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고 말한다면, 단지 경서만 읽어야 마땅하다는 것인가?

이극돈은 이치를 아는 대신인데, 어떻게 불가함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였겠는가? 지난번에 유지가 경상감사로 있을 때, 「십점소(十漸疎: 위징(魏徵)이 당태종(唐太宗)에게 올린 10가지 경계의 글」를 병풍에 써서 바치니 의논하는 자들이 아첨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지금 말하는 것이 또 이와 같다. 내가 전일에 그대들에게 이 책들을 대강 주해하도록 명하였는데 그대들은 필시 주해하는 것을 꺼려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다. 이미 불가함을 알았다면 애초에 어찌 말하지 아니 하였는가?’ 하였다(傳曰 如爾等之言 以酉陽雜俎等書 爲怪誕不經 則國風左傳所載 盡皆純正歟 近來印頒事文類聚 亦不載如此事乎 若曰 人君不宜觀此等書 則當只讀經書乎 克墩識理大臣 豈知其不可而爲之哉 前者 柳輊爲慶尙監司時 書十漸疎于屛進之 議者以爲阿諛 今所言亦如此也 予前日命汝等 略註此書 必汝等 憚於註解而有是言也 旣知其不可 則其初何不云爾).”2)


왕배덕배 시비를 가리려드는 이 글을 보면 김심 등의 상소가 단지 소설 배척을 위해서만이 아니라는 요량이 분명하다.

위의 내용으로 보면 김심 등은 『유양잡조』가 괴탄불경의 서이기에 이극돈을 탄핵하였다고 강변强辯하였다. 그러나 성종의 대답은 『사문유취事文類聚』 또한 괴탄불경의 서인데, 왜 『사문유취』를 인쇄 반포 할 때는 침묵을 지키다가 이제 『유양잡조』를 인쇄하여 책을 펴내니 이극돈을 탄핵하는 것이냐고 한다.

성종은 김심 등을 영 미심쩍다는 듯이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