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소설논쟁(유양잡조 사건:성종)(2)

2008. 8. 1. 13:00고소설 백과사전/고소설사 4대 사건

 

이제 ‘괴탄불경怪誕不經’이란 말 줄기부터 걷어 올려보자.

본래 괴탄불경怪誕不經이란 용어는 『서전書傳』, 「우공禹貢」 주에서 동혈同穴을 설명하는데 용례가 보인다. “새와 쥐가 함께 암놈과 수놈이 되어서 한 구멍에 처한다고 하였으니 그 말이 허탄하고 괴이하니 믿을 것이 못 된다(鳥鼠共爲雌雄 同穴而處 其說怪誕不經 不足信也).”는 말이 그것이다.

우리의 실록1)에서 처음으로 괴탄불경한 책으로 지목된 작품은 『신비집神秘集』이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사관 김상직에게 명하여 충주서고의 서적을 가져다 바치게 하였는데 … 『신비집』․『책부원귀』 등의 책이었다. 또 명하였다. ‘『신비집』은 펴 보지 말고 따로 봉하여 올리라.’ 임금이 그 책을 보고 말하기를, ‘이 책에 실린 것은 모두 괴탄(怪誕)하고 불경(不經)한 말들이다.’ 하고 승지인 유사눌에게 명하여 이를 불사르게 하고, 그 나머지는 춘추관에 내려 간수하게 하였다(命史官金尙直 取忠州史庫書冊以進 … 神秘集 冊府元龜等書冊也 且命曰 神秘集 毋得披閱 而別封以進 上覽其集曰 此書所載 皆怪誕不經之說 命代言柳思訥焚之 其餘下春秋館 藏之).”2)


『신비집』이 괴탄하고 불경하다하며 불사르라고 하는 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 지는 잘 알 수 없다. 다만 태종 17년(1417)의 기록을 보면 『신승전』이 ‘여러 괴탄한 중의 요망한 말과 궤이한 행적을 모은 책’임을 알 수 있다.3) 따라서 『신비집』 또한 『신승전神僧傳』과 유사한 소설류일 듯하다. 『신승전』은 신이神異한 중 208인의 전기를 기록한 책으로 명나라 태종이 몸소 만든 것인데, 한나라 마등摩騰에서부터 원나라 담파膽巴까지 승려들의 기이한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괴탄불경지서로 지칭한 『신비집』은 불사르라고 하였으나 괴탄한 중의 요망한 말과 괴이한 행적을 기록한 『신승전』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오히려 세종 1년(1419)의 『실록』에는 『신승전』을 잘 간수하여 더럽히거나 훼손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신승전』이 분명히 괴탄한 중의 요망한 말과 궤이한 행적을 모은 것임에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으로 미루어 소설류에 대한 별다른 반응을 세종 때까지 보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괴탄불경지서’가 소설 논쟁으로 비화한 것은 성종[成宗, 1457~1494] 24년인 계축년 섣달 스무여드레 날이었다. 이것은 당시 집권층의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비롯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놈의 드잡이질하는 정치인들은 상대방을 뉘기 위하여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한 듯하다. 결말은 좀 싱겁지만, 우리 소설사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니 자세히 짚어보자.

그것은 김심金諶(1445~1502)이 1493년  12월 28일 임금에게 올린 간단한 상소문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이극돈李克墩(1435~1503)과 이종준李宗準(?~1499) 『유양잡조酉陽雜俎』․『당송시화唐宋詩話』․『파한집破閑集』․『보한집補閑集』․『태평통재太平通載』 등을 인쇄하여 책을 펴내 임금에게 바쳤다. 그러자 성종이 이를 대궐 안에 간수토록 하고 김심 등에게 『당송시화』․『파한집』․『보한집』 등의 역대의 연호와 인물의 출처를 대략 알기 쉽게 풀이하여 바치라고 하였다.

그러자 부제학 김심 등이 『유양잡조酉陽雜俎』․『당송시화唐宋詩話』 등의 책들이 ‘괴탄하고 불경스런 책(怪誕不經之書)’․‘실속이 없이 겉으로만 화려하고 희극적인 말(浮華戱劇之詞)’․‘괴탄하고 희극적인 책(怪誕戱劇之書)’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주해註解하기를 거부하는 상소문을 올린다.

그러니 이번에는 모독을 당했다고 생각한 이극돈이 자기를 꺼리고 미워한다며 피혐避嫌하기를 청한다. 그런데 여기서 논쟁이 된 『당송시화』는 당나라와 송나라의 시에 관한 비평과 해설, 고증과 시인의 일화 따위를 단편적으로 기록한 책이니 소설과는 무관하다.

다만 『유양잡조』는 약간의 소설적인 내용을 지닌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