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보며

2021. 10. 29. 10:46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보며

권력은 민심의 바다에 떠 있는 배임을 명심해야 한다.

by휴헌 간호윤방금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본다. 정부는 국가장이라 하나 많은 이들은 아니라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장으로 하였다. 아래는 그때 써 놓은 글이다. 2021년 10월, 12년 전 5월 하늘의 그 곡성이 아직도 쟁쟁히 들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3) 

 

문을 여니 신문이 보인다. 발치로 밀어냈다. 10여 년 동안 누가 뭐래도 보아오던 신문이다. 어제 말을 했고, '넣지 말아 주세요’라고 써 놓았건마는- 

 

어제저녁 늦게 반기(半旗)를 내걸었다. TV에서 시청 앞을 공권력으로 통제한 장면이 보였다. 경찰차로 커다란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정부, 망자에 예우를 다하겠다는 정부의 모습은 아니다. 

 

아침 뉴스에 현 통수권자가 망자를 찾겠다고 한다. 비열함의 극치는, 권력의 용병임을 자임하는 저들 검찰의 행위로 그쳐야 한다. 조선인치고, 검찰이 ‘정치권의 시녀’임은 모르는 체하는 사람만 모른다. 그래, 그러려니 한다. 전두환 정권 때도 저들은 늘 그러했다. 배경이 이미 칠흑이라, 세탁을 해도 밝아지기는 참 어려운 집단이다. 한 나라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검찰의 뒤에 누가 있음은 국민이 다 아는 일이다.

 

그 통수권자가 '망자를 찾는다'한다. 나라도 막아설 텐데, 그 장면을 보는 국민들은 또 어떠한 생각을 하겠는가. 돌아서든, 분향을 하든, 통수권자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저열한 계산법이리라. 현 통수권자의 안타까워하는 얼굴, 뒤돌아서는 모습, 혹은 분향하는 모습, 모든 게 다 밑질 게 없다는 산수놀음이리라. 

 

그런 예의가 있었다면 진작 갖추었어야 한다. 선인들의 문자인, ‘무치망팔(無恥忘八)’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보다. 관 뚜껑을 덮은 망자가 뛰어나올 일이다. 

 

정부분향소도 만든다고 한다. 만들려면 이미 그제 만들었어야 한다. 민심의 동태를 예의 주시했다는 뜻이다. ‘가증스럽다’ 또한 이럴 때 쓰라는 말인 듯싶다. 

 

공자는 ‘정치(政治)란 무엇이냐?’는 제자의 물음에, ‘바름(正)’이라고 하였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바름’이라는 두 글자를 국민들은 이미 새겨 주었다. '바름'은 하느님의 윤허 사항이 아니다. 그래, 본인들도 ‘섬김의 정부호’라고 제 이름자를 그렇게 새겨 내건 것 아니겠는가.

 

권력은 민심의 바다에 떠 있는 배임을 명심해야 한다.

바다가 출렁이면 배는 뒤집힌다.

 

2009. 오월 스무닷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흗날.

 휴휴헌에서 간호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며(8)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며 여덟 번째 글을 쓴다. 오늘이 '바보 노무현'이라 불린 전 대통령이 이승을 하직한 지 여드레째 되는 날이다.

 

어제 아침 아래와 같은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나무와 사람은 누워보아야 그 크기를 안다’ 

미국의 명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승승장구한 정치인 스탠튼, 시골뜨기 청년 링컨의 학벌이나 생김새를 가지고 ‘시골뜨기 고릴라’라고 조롱하였던 그가 링컨의 장례식장에서 가장 크게 울며 한 말이었다.

 

왜 우리에겐 저런 정치인 하나 없는 걸까? 수업을 서둘러 마치고 시청 앞에 도착하였다. 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장을 치르는 시청 앞은 이미 초여름이었다. 아스팔트는 열기로 달아올랐다. 어디선가 시민 사회자로 나선 김제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물기가 넉넉히 배어 있었다. 추모 인파로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아니, 오늘은 슬퍼해야겠습니다.”

“미안해하지 마라.”

“아니, 오늘은 미안해해야겠습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시민장이 진행되며, 옆에 서 있는 사내가 눈가를 연신 훔치는 것을 보았다. 50세쯤 되는 건강한 사내였다. 20대 후반 큰 몸집의 청년은 이 더운 날에도 검은 예복을 차려입었다. 넥타이도 단추도 제 자리에 잘 정돈되었다. 나도 하늘을 쳐다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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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이 파랗기만 했다.

노란 풍선 하나가 날아올랐다.

 

시청 앞에서 서울역까지 운구를 따라 걸었다. 내 옆은 엄마에 손을 꼭 잡고 걷는 아이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나이와 남녀가 따로 없었다. 반정부 구호는 없었다. 자중하는 분위기는 역력했다

 

사람들은 ‘조, 중, 동’의 바르지 못한 언론 행태를 성토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검찰’의 바르지 못한 사법 행태를 성토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20년은 후퇴한 민주주의’를 슬퍼할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의 정치보복을 성토할 뿐이었다.

 

공영방송 kbs 카메라가 행사를 취재하다 쫓겨났다. kbs가 공영방송이라는 게 마음 아프다. 후일 저들이 kbs에 몸담았던 것이 ‘조, 중, 동’만큼이나 부끄럽게 역사에 기록될지 모르겠다. ‘공영(公營) 방송’에서 ‘공(公)’이 없으니, ‘영리(營利) 방송’이 되었다는 뜻이다.

 

새로 짓는 숭례문 옆을 지날 때, 누구의 입에선가 ‘노무현’이 나왔고, 자연스레 ‘대통령’이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

사람들의 목소리가 두 패로 나뉘었다.

“노무현!”

“대통령!”

목소리는 드높았고 힘찼으나, 울분에 차 있었다.

 

서울역까지 “노무현!” “대통령!”은 길게 길게 이어졌다. 자신의 대통령이 노무현이라는 의미임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시계는 세 시를 넘긴 지 오래되었다.

아스팔트의 아지랑이가 하늘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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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전철은 말없이 흐르는 한강을 넘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크기를 나는 잘못 재었다. 내 깜냥으로는 그 이의 크기를 잴 수 없었다. 적어도 시청 앞 노제에서 본 그에 대한 추모 열기를 따라잡을 망자는, 당분간 이 나라에서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열어보니 외신들도 ‘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장’이라 한다. 사실, 난 지금까지 살며 누구를 위하여 이렇게까지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반기를 게양하고, 상장을 가슴에 달고, 시민장에 참여하고, 여덟 편의 짧은 글을 쓰며 많은 생각을 한다.

 

내가 책에서 본 정답은 안타깝게도 하나도 안 맞았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옥황상제가 낮잠을 주무시려는데 인간세상이 꽤나 시끄러웠다.

그래, 벼락대신을 불러서 ‘저놈들 시끄러우니 어떻게 좀 해보게.’라고 했다.

이윽고, 벼락소리가 한 번 나더니 조용해졌다.

옥황상제는 의아해하면서 낮잠을 달게 주무시고 일어나 벼락대신을 불렀다.

“거, 벼락대신 재주도 좋소. 아니, 저 시끄러운 놈들을 벼락 한 번으로 처리하다니.”

벼락대신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 글쎄.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니 떼도둑과 농사꾼 한 명이 다투는 소리지 뭡니까. 뭐, 농사꾼 소리가 얼마나 나겠습니까. 떼도둑놈들에게 벼락을 때려야 옳지만, 그러면 여러 번 벼락소리를 내야하지 않겠는지요. 그래, 상제께서 불편해하실 것 같아 농부에게 벼락을 쳤지요.

 

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2009. 5. 30.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여드렛날.

휴휴헌에서 간호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