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산다는 게 -

2021. 3. 12. 09:09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시지프스만 오늘 이른 아침부터 산등성이로 돌을 굴리는 게 아니다. 누구나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면 다 그렇다. 그렇게들 살아내는 게 인생이다. 언젠가부터 시지프스가 오늘을 나보다 좀 쉽게 살아낸다는 생각이 든다. 시지프스야 혼자 고독하게 돌을 굴리는 거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증명이나 하듯 늘 사람은 사람과 인생길을 걷는다. 그런데 이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나같이 300년 된 씨족마을에서 성장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코 흘리기 전부터 “어른들께 인사 잘해라”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지금도 시골 내려가면 내 어머니께서는 “동네 분들께 인사 잘하라”고 하신다. 아들 나이 몇이 되었고, 집안이라야 겨우 일곱 집이요 모두 타지인들이 들어와 사는데도 조금도 개의치 않으신다. 그래 그런지, 저래 그런지, 서른이 넘은 아들이 한 번은 이런 질문을 했다. “아빠, 아빠는 시골만 내려가면 왜 차를 세우고 동네 사람들에게 다 인사를 해? 난 어릴 때부터 그게 너무나 싫었어.” 어린아이가 보더라도 내 인사가 지나쳤던 듯하다.

 

난 남에게 매몰찬 소리조차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러던 내가 두어 해 전부터 두 사람을 외면한다. 정확히 말하면 한 사람은 그쪽이 먼저 내 인사도 안 받은 지 일 년 만에 그러한 것이요, 또 한 사람은 세탁소 주인으로 맡긴 옷이 분명 못 입게 된 것을 따지다 그렇게 되었다. 앞사람은 운동하는 데서 뒷사람은 서재 앞 세탁소이기에 참 고역이다. 그래도 마땅히 딴 방법이 없다. 나에게 모욕적인 행동을 하는데 그것을 감내하자니 내 인격이 모자라고. 하여 나 역시 외면하지만 마주칠 때마다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게 아니다.

 

세상을 살며 가장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 자식 자랑, 건강 자랑, 아는 게 많다 떠들어 대는 사람은 그래도 들어줄 만하다. 은연중 돈 자랑, 제 말만하는 사람은 그 다음이다. 가장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부끄러움과 예의가 없는 사람이다. 저런 사람들은 상대방은 아랑곳없이 제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제 삶만이 옳은 길이고 알고 있는 지식만이 진실이라는 확증적 편향을 갖고 있어서다. 상대가 그 나이에서 한 치도 어그러짐 없는 인생길을 걸은 존엄한 인간이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다. 저런 사람의 또 한 특징은 모든 잣대를 대부분 물질에 둔다. 아파트 평수로 사람을 재단하거나 지위로 사람을 평가하고, 저보다 위계질서가 높거나 이익이라도 생기면 철저히 복종하거나 기생한다. 저런 사람을 만나면 그 말과 행동에 상대 인생길은 여지없이 초라해지고 삶은 피폐해진다. 술 좋아하는 나지만 저런 사람을 만나면 술맛조차 꼭 소태 씹는 맛이다.

 

문제는 저런 사람을 안 만나면 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저런 사람들 특징이 처음에는 너무 경우 바르기 때문이다. 하나 둘씩 제 본색을 드러낼 때쯤이면 이편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미 인생길 여기저기서 만나는 사이가 되어버려서다. ‘안 만나자니 야박하고 또 누구나 한두 가지 흠은 있는 법’이니 하고 참아버린다.

 

오늘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이다. 잠자는 시간과 이지가지 꼭 해야 될 일, 수업, 약속, 기타 등을 제하면 겨우 서너 시간쯤이다. ‘이 소중한 서너 시간을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예의가 무엇이지 모르는 저런 사람들과 함께할 바에는 차라리 시지프스처럼 고독한 인생길을 걷는 게 낫다.’ 결론을 이렇게 내자니, 어떤 이는 ‘너 참 속 좁다’할 것이요, 또 어떤 이는 ‘그러는 너는 뭐가 대단해서’라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가 그러든 말든, 이제 내가 저런 이를 멀리하려 한다. ‘내 인사를 안 받은 저 이’나 ‘세탁소 주인’에게도 불편한 마음 안 가지려 한다. 써놓고 보니, 글이 참 야멸차고 인정머리 없다. 책깨나 읽고 공부한 게 다 소용없는 짓처럼 여겨진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달관할까요? 그런 날이 올까요?” 하늘을 우러러 물어보니 하늘도 괴롭다 묻지 말란다. 세상 산다는 게 참 어렵고도 어렵다.

오늘, 사람 냄새 나는 인간다운 인간을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