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 저런 날>

2021. 2. 4. 11:44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이런 날>

202123, 함박눈이 평펑 내린, 이런 날이 있다.

아빠 이거 써.”

살갑지 않은 딸이 전기방석을 내민다. 얼떨결에 받아 든 내가 의아한 눈으로 딸을 쳐다보았다.

. 나 오늘 사직서 냈어.”

 

아침부터 딸의 얼굴은 우울했다. 나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딸아이는 2개월 전, 다니던 광고 회사를 그만두고 새 직장으로 옮겼다. ‘알파문구’라고 중견기업체였다. 선생이라 그런지 길에 떨어진 볼펜을 줍는 나로서는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딸과 잘 맞을 듯했다. 더욱이 이 코로나19 정국이다. 딸아이가 대견하였고 사원을 뽑은 회사는 더욱 그러하였다.

올겨울은 꽤 춥다. 으스스 몸을 떨며 출근하는 딸을 위해 역까지 기사를 자청했다. 1주일쯤 지났을까. 출근하는 딸아이 옷차림이 전과 달라졌다. 바지를 즐겨 입는 딸이 치마를 입는다. 딸아이는 졸업 후 전공을 살려 10여 년 광고회사 쪽에서 글쓰기를 하였다. 그래 그런지 옷차림도 꽤 자유분방한 편이다.

딸과 짧은 대화에서 회사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회장이 사원 옷차림까지 상무이사에게 말하고 상무이사는----’ 인터넷에서 회사 회장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았다. ---.

아직 나도 내 딸아이의 재능을 모르는데 정확히 두 달 만에 칼같이 안 저들의 안목이 부럽다. 직원 선발과 퇴출을 일회용품 사고팔 듯하는 회사 운영 방침이 모지락스럽고, 한 사람의 존엄한 인격을 돈 몇 푼으로 환전한다는 몰상식이 더욱 잔인하다. 평생을 방안풍수로 책만 들여다본 선생인 나, 부모라 그런지 이 모든 게 내 책임만 같다.

겨우 2개월 만에 모멸감으로 사직서를 쓰고, 전기방석을 들고, 사무실을 나선 내 딸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34년 인생이니 감당하렴.”이라 할까? 61년, 환갑을 산 이 아빠도 오늘, “이런 수업 들으려 등록금 낸 게 아니다.”는 최하 5% 강의평가를 받았다는 위로의 말을 건넬까? 아니면, “이런 날이 있으니, 저런 날이 오겠지.”라 할까?

문득, 전상국 선생의 <우상의 눈물>에서 어설픈 악당 기표의 말이 떠올랐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저런 날>도 떠오른다. 글 쓰고 선생 노릇하면서 염치없는 탐욕을 부린 적도 없지만 각박한 인심은 참 낯설지 않다. 아래는 저런 날 써 둔 글이다.

<저런 날>

문득 그 날 일이 떠오른다.

지금으로부터 4개월 전, 2016219일 금요일 오전 1153분 다정다감하고는 선천적 거리(?)를 두고 있는 딸아이에게 카톡이 왔다.(카톡방은 나, 집사람, 딸 아이와 아들만의 공간이다.)

아빠 나 샘터기자로 취직함.”

우리 세 식구는 동시에 반응을 보였다. 직업으로서 축하할만한 일이기도 하지만, 샘터사였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글 쓰는 나 아닌가. 더욱이 이 각박한 세상, 훈훈한 인간 향내를 풍기는 샘터사다.

바로 이러한 문자를 보냈다.

샘터면 의식 있는 출판사.”

맞아. 00이가 글 쓰는 일로 돌아와 기분 좋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안이 다 그런 쪽이네. 축하. 의식 있는 기자되렴.”

얼른 전화를 해 보니 월요일부터 출근을 하라고 했단다.

내 딸 아이는 한신대학교 문창과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매일경제에 들어갔고 다시 잡지사, 자라라는 패션회사를 다녔지만 안정을 찾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고 문창과 출신이면서도 디자인을 배워 취업하는 등, 나름 제 갈 길을 찾았기에 개의치 않았다. 의식이 뚜렷한 아이 아닌가. ‘아하! 드디어 내 딸아이의 잠재력(순간적인 표현력이 참 좋다.)을 알아주는 출판사가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꼬리를 슬며시 물었다.

아빠로서도 뿌듯했고 또 내가 글을 써서인지, 으쓱한 마음에 종두득두라는 녀석도 말참례를 해댔다. ---. 그러다 순간, 세상 경험 적지 않은 내 마음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샘터사 정도 되면 쟁쟁한 스펙을 자랑하는 아이들이 많이 지원하였을 텐데. 세상이 바뀌었나보구나, 그렇지 세상은 역시 살만한---’

이런 생각을 하며 손수건 반 장 크기만한 서재 밖을 쳐다보았을 때였다.

카톡!”하고 문자가 왔다. 그렇게 큰 카톡 소리는 처음이었다.

잠깐만

딸아이에게서 온 문자는 단 석 자였다. 시간은 1218분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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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는 월요일 출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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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한참이 지난 후, ‘편집장이 전화해서 합격 취소했고---위에서---그래 어쩔 수 없이--- 미안하다는 요지의 글도 받았다.’라는 말을 아내에게 들었다. 이야기는 내 모골을 송연케하기에 충분했다.

분명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그린다는 출판사다. 그래, 넘지 말아야할 금도가 있는 법이다. 허나, 제 아무리 민낯인들 이토록 겉과 속이 다르단 말인가. 마치 브레히트 희곡이라도 보는 양 낯설기수법이라도 쓰는 것인가?

더욱이 있을 수도 없는 일의 결과는 '죄없는 내 딸의 가슴아픔'이란 문책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일이 내 딸에게 일어났건마는 나는 아무런 말도 못했다. , 딸아이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이런 의식 있다는 출판사도, 글을 쓴다는 아빠도, 사장이란 어른도, 모두가 진짜인 척하는 가짜일지도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자꾸만 들었다. 저들이나 나나 그렇게 사이비들이었다.

2016311일 금요일 난 딸아이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00! 요사이 힘들지. 금수저 아니라서^^---. 그래도 네가 씩씩하게 사회 생활하는 게 아빤 자랑스럽다. 카르페디엠!”

딸아이는 바로 이런 문자를 보냈다.

금수저 안 부러움~아빠도 카르페디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