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이여! 호곡장(好哭場)이어라.

2016. 11. 12. 13:51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광화문광장이여! 호곡장(好哭場)이어라.

 

담화를 읽어 내리는 박대통령의 눈가에 눈물이 스쳤다. 여당 대표는 이 담화를 보고 아주 펑펑 울었다 한다. 총리로 지명 받았다는 김병준 총리 내정자도 기자들과 대화 중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쳤다. 국정을 농단(壟斷)한 최순실은 아예 울음보를 터뜨렸고 엊그제 귀국한 차은택도 눈물을 흘렸다.

왜들 울까?

울음의 종류는 가지가지다.

사람은 울음으로부터 삶을 시작하여 울음소리를 들으며 삶을 마친다. 가장 먼저 어린 아이의 울음은 나 이 세상에 왔어요.”하는 고고한 일성이다.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이 울음이다. 울지 못하면 사람이 안 된다. 바로 주검이 된다. 울음은 그래 사람임을 증명하는 징표요, 가장 즐거운 울림이다. 18세기 최고의 글쓰기 고수인 연암 박지원 선생은 1796310, 큰 아들 종의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손자를 낳았다는 전갈을 듣고 쓴 글이다.

초사흗날 관아의 하인이 돌아올 때 기쁜 소식을 가지고 왔더구나. ‘응애 응애하는 간난쟁이의 그 울음소리가 편지 종이에 가득한 듯하구나. 인간 세상의 즐거운 일이 이보다 더한 게 어디 있겠느냐? 육순의 늙은이가 이제부터 손자를 데리고 즐거워하면 됐지 달리 무엇을 구하겠니?”

 

전쟁터의 울음도 있다. 신재효본 <적벽가>의 한 장면이다. 조조가 적벽에서 패하여 도망하다 어리석게도 화용도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조조 군사들의 울음이 처량하기 짝이 없다.

적벽강에서 죽었더라면 죽음이나 더운 죽음, 애써서 살아 와서 얼어 죽기 더 섧구나."

처량한 울음소리소리 산곡이 진동하니 조조가 호령하여,

"죽고 살기 네 명이라 뉘 원망을 하자느냐."

우는 놈은 목을 베니 남은 군사 다 죽는다. 처량한 울음소리소리 구천(九天)에 사무치니,”

<소대성전>이란 군담소설에도 울음이 나온다. 황제가 호왕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상황이다. 앞에는 장강이 막고 있는데 추격병은 급히 달려오고 있다. 강을 건널 배도 없고, 장수들이 나가 대적했으나 모두 호왕에게 죽음을 당한 상황이다. 이제 황제는 자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살도 하지 못하고 항복하는 글을 써서 바쳐야 할 판이다. 더욱이 곤룡포 자락을 뜯어서 혈서로 항복하는 글을 써야 할 만큼 절망적이고 비통한 울음이다.

이렇게 슬피 울었다. 그러자 오랑캐 왕이 천자가 탄 말을 찔러 거꾸러뜨렸다. 황제가 땅에 굴러 떨어졌다. 오랑캐 왕이 창으로 천자의 가슴을 겨누며 꾸짖었다.

죽기 싫으면 항복하는 글을 써서 올려라.”

천자가 급하게 대답하였다.

종이도 붓도 없으니 무엇을 가지고 항복하는 글을 쓴단 말인가?”

오랑캐 왕이 크게 소리 질렀다.

목숨이 아깝다면 곤룡포를 찢어 거기에다 손가락을 깨물어서 써라.”

하지만 차마 아파서 그러지 못하고 통곡하였다. 그 울음소리소리가 구천(땅속 깊은 밑바닥이란 뜻으로, 죽은 뒤에 넋이 돌아가는 곳을 이르는 말)에까지 사무쳤다.

제 아무리 영웅이라도 비껴 갈 수 없는 게 이 울음이다. 항우가 유방에게 패하여 우미인(虞美人)과 눈물로 이별할 때, 슬피 울며 부른 해하가(垓下歌)도 있다. 한때 중원 대륙을 호령했던 항우는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한 남성에 지나지 않았다.

역발산혜기개세 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만하지만

시불리혜추불서 時不利兮騶不逝 형편이 불리하니 오추마도 나아가질 않는구나

추불서혜가내하 騶不逝兮可奈何 오추마가 나아가질 않으니 내 어찌 할 것인가

우혜우혜내약하 虞兮虞兮奈若何 우미인아! 우미인아! 내 너를 어찌할거나

이 시를 듣고 우미인은 자결하고 이어 항우도, 항우의 애마 오추마도 주인의 죽음을 알았는지 크게 한번 울음 운 뒤 오강에 뛰어들었다.

영웅들 중에는 조조도 잘 울었고 유비는 툭하면 울어 아예 유비냐. 울기도 잘한다라는 속담까지 만들어 내었다. 연암 선생은 이런 영웅들의 물음을 <마장전>에서 영웅이 잘 우는 까닭은 남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기 때문 아니겠나.”라고 하였다.

목 놓아 우는 울음도 있다.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비판하며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짓는 장지연의 울음이다.

 

지금까지 내가 본 글에서 가장 멋진 울음은 연암 선생의 열하일기(熱河日記)도강록(渡江錄)78일자 일기 호곡장(好哭場,울음 터)’에 보이는 웅대한 울음이다. 그 날은 178078일이었다. 연암 일행에게 저 멀리 백탑이 보였다. 백탑(白塔)이 보인다는 것은 왼편으로 큰 바다를 끼고 앞으로는 아무런 거칠 것 없이 요동 벌판’ 1200리가 펼쳐진다는 의미이다. 연암 선생은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는 긴 탄식을 토하였다.

! 참으로 좋은 울음 터로다. 내 크게 한 번 울만하도다!”

연암은 중화(中華)만을 떠받들고 일부 양반만의 나라 소국 조선의 선비였다. 그래 저 거대한 요동벌에서 한바탕 꺼이꺼이 큰 울음을 울고 싶었을 것이다.

 

우는 모습은 참 순수하다는 느낌이 든다. 다가가 그 들썩이는 어깨라도 안아주고픈 울음들이다. 다석 선생은 그래서 울라 한다. 눈물은 귀하기에 이승에서 다 쓰고 가라한다. 눈물은 그만큼 우리 삶을 가장 순수하게 만들어주는 물질이기 때문이란다. 우는 이의 어깨는 우는 이의 뒷모습은 그래서 참 사람답다. 꺼이꺼이 우는 울음이든 흐느끼며 우는 울음이든 울음은 참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하지만 저들의 울음은 울음도 아니고 다가가 안아주고픈 마음도 없다. 마치 <심청전>에서 밤기운이 차디차게 내린 한밤중에 울어대는 뺑덕어미의 울음처럼 듣기도 보기도 싫다.

이때 그 마을에 서방질 일쑤 잘하여 밤낮없이 흘레하는 개같이 눈이 벌게서 다니는 뺑덕어미가 심봉사의 돈과 곡식이 많이 있는 줄을 알고 자원하여 첩이 되어 살았는데, 이년의 입버르장머리가 또한 ○○ 버릇과 같아서 한시 반 때도 놀지 아니하려고 하는 년이었다. 양식 주고 떡 사먹기, 베를 주어 돈을 받아 술 사먹기, 정자 밑에 낮잠자기, 이웃집에 밥 부치기, 마을 사람더러 욕설하기, 나무꾼들과 쌈 싸우기, 술 취하여 한밤중에 와 달싹 주저앉아 울음울기,---”

 

듣기도 보기도 싫은 이유를 <마장전>에서 영웅이 잘 우는 까닭은 남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기 때문 아니겠나.”라는 연암 선생의 글에서 슬며시 귀띔을 받는다. 박근혜대통령에서 뺑덕어미까지, 저들은 영웅이 아니니 앞 문장은 떼어버리고 남의 마음을 움직이려고만 남기면 꽤 설득력이 있다. 저들이 우는 울음은 무엇인가를 목적에 둔 간교한 울음이 아니면 제 것을 잃어버린 것을 원통해하는 울음이거나 국민들을 잠시라도 속여 보려는, 이도저도 아니면 못된 심술이 가득 찬 그런 울음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울음을 건울음이라 한다. 건울음은 정말 슬퍼 우는 울음이 아니라 겉으로만 우는 가증스런 울음이다.

 

오늘, 광화문에 가면 참 많은 이들의 울음을 보고 들을 것이다. 진정 누군가를 속이려는 거짓 울음이 아닌, 참 이 땅의 국민들이 가슴아파하여 울부짖는 눈물을 말이다. 저들도 이런 눈물을 흘리고 이런 울음을 울었으면 한다.

오늘! 20161112일 광화문광장,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참, 목 놓아 울고 싶은 호곡장(好哭場)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