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18. 07:52ㆍ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헌혈(獻血) 유감(有感)
봄날이다.
수업을 마치고 휴휴헌으로 가는 길, 나른한 봄날 오후가 세상사 긴장을 잠시 해제시킨다. 휴휴헌 거의 다와 저만치 헌혈차를 만났다. 하얀 차에 그려진 선연한 붉은 십자가, 그리고 헌혈을 유도하는 내 딸 나이쯤 되는 예쁜 아가씨가 그 옆에 서있다. 저만치 서 있지만 왠지 헌혈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좀 맥도 없는 듯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헌혈을 언제 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잡으면 하고 가야지’하며 짐짓 아가씨 앞으로 보란 듯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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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잡지 않았다.
아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왜? 무엇 때문이지?---’
생각해보니 서울역에서도, 학교에서도, 아니 다른 어느 곳에서 나에게 헌혈을 하라고 잡은 적이 없었다. 귓결에 헌혈을 하면 이러저러한 병도 찾아준단 말도 들었는데, ‘왜? 무엇 때문이지?---. 그래, 좋은 일 한번 하자. 혹 이러저러한 병도 찾아주면 좋겠고. 시간도 있겠다.’
뒤돌아섰을 때, 헌혈녀는 저만치에서 역시 멍하니 서있었다.
하지만 내가 다가가 “헌혈 좀 해볼까요?”라고 말하기 전까지, 헌혈녀는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내 말에 뜨악하며 말똥 나를 쳐다보더니, “아, 예.”하고는 제 2의 헌혈녀에게 “여기, 이 분.”하고 나를 건네주고는 차 밖으로 나갔다.
헌혈차 안엔 고등학생쯤의 앳된 여학생만이 헌혈을 하고 있었다. 내가 윗옷을 벗으려하자, “아니예요.”하며 다가온 제2의 헌혈녀는 종이를 내밀었다. 문진표부터 작성하란다. 문진표는 내 주민등록부터 직업, 각종 병력 등, 앞뒤로 제법 빽빽하였다. 눈길을 끄는 것은 문진표 성명기재란에 ‘00고등학교 0반’이라는 란이 있었다. 고등학생들이 헌혈을 많이 하는 것이라 짐작했다. 정성껏 작성해 주니, 이제는 제 3의 헌혈녀에게 나를 인계하였다.
제 1, 제2의 헌혈녀도 그렇지만, 제 3의 헌혈녀는 아예 표정조차도 없었다. 제 2의 헌혈녀는, 제 3의 헌혈녀와 내가 앉자 둥글게 커튼을 쳐주었다.
‘무엇이 이리 복잡하지?’
순간, 당황스럽기 시작했다. 내가 이 감미로운 봄을 타 아픈 이들을 위하여 큰마음 먹고 피를 좀 나눠주러 왔거늘. ---‘혹 헌혈을 못 하고 쫓겨나는가?’하는 우스운 생각마저 스쳤다.
제 3의 헌혈녀는 내 문진표를 보며 혈압을 재게 윗옷을 벗으라고 하였다. 혈압을 문진표에 기록하고는,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이제는 혈액형을 알아보겠다고 바늘을 들며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제 약주는 안하셨겠지요?”
생각할 것도 없이 어젠, 오늘 아침에 수업이 있어 맥주 한 병 밖에 안 했던 터다. 기분 좋게 말했다.
“예. 겨우 맥주 한 병이요.”
제 3의 헌혈녀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야릇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바늘을 놓고 말했다.
“그럼, 안 되는데요.”
“예? 아니 맥-주 한 병인데요?”
제 3의 헌혈녀 말투는 단호했다.
“예. 안 됩니다.”
그러고는 일어나 커튼을 거두었다.
이제야 알았다.
헌혈차 옆을 그렇게 지나도 잡지 않은 이유를. 내 피는 이미 맑지 못하였다. 생각해보니 문진표에 ‘00고등학교 0반’이라는 란이 있었던 이유가 떠듬적떠듬적 짐작이 갔다.
아! 나에겐 헌혈이 더 이상 ‘헌혈’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칠 헌(獻)에 피혈(血)’, 피를 바치는 경건한 행위이어야 했다.
상점의 유리창에 비친 나의 실루엣은 영락없는 늙수그레한 낙타였다. 피조차 탁해진채로 세상사 긴장을 그대로 등허리에 짊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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