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을 내가 읽다가

2015. 2. 27. 09:42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날이 춥다.

가는 겨울을 시샘이라도 하듯. 어제도 살아본 세상이 오늘 아침엔 아주 낯설다.

그래도 책을 들고 책상에 앉았다.

눈에 띄는 내 책을 꺼내 들었다.

그 한 쪽에 눈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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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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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봄 뜻을 머금은 게 차이가 없건만, 사물을 느끼는 사람의 마음은 얕고 깊음이 있구나(花含春意無分別 物感人情有淺深)”라는 말이 있다. 글도 그렇다. 허연 백지 위의 파리 대가리만한 흑점일 뿐이지만, 보는 자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만해 선생의 <춘주春晝>라는 연시조가 있다. 풀이하면 ‘어느 봄의 한낮정도의 의미이다.

 

따스한 볕 등에 지고 유마경 읽노라니

가벼웁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린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오.

 

춘주(春晝)2수 중, 1수이다. 한용운 시전집에는 춘화(春畵), 그림 같은 봄날이라고 되어 있다. ‘봄날의 낮이든, ‘그림 같은 봄날이든, 만해 선생의 깨달음의 세계를 읊은 선시임엔 틀림없다.

만해 선생이 따스한 봄볕을 등에 지고 불교의 경전인유마경을 읽는다. 나른한 졸음이 오는 봄날의 한낮. 그때 어디선가 팔랑이며 봄꽃이 날아와 유마경한 글자 위에 앉는다. 만해 선생은 구태여 꽃 밑의 글자를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어찌 유마경속에 진리가 있겠느냐는 깨달음이다. 선가에서는 부처님의 경전을 깨닫고 보면 휴지조각과 같은 무용지물이라고 한다. 나른한 봄날의 볕, 어디선가 날아 온 꽃 잎 한송이가 깨달음의 세계로 만해를 이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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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전부가 아니거늘, 종이와 먹물을 버려야할진대------

주억거린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오. 구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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