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문화의 길라잡이-Biblia | Biblia에 쓴 글

2014. 12. 15. 14:47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출처 책과 문화의 길라잡이-Biblia | Biblia
원문 http://blog.naver.com/wisdomcellar/220205697544

 

   

: 간호윤 교수

 

살다보면 자신의 재능에 한계를 느끼는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사람의 재능을 따라갈 수 없어서 문득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말이다. 그럴 때 나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 염구의 대화, 그리고 낭환집서에서 연암 박지원 선생이 했던 말을 되새긴다. 이 두 권의 고전은 나를 삶의 절벽에서 구해준 밧줄과도 같다.

 

# 이놈! 네 자신의 한계를 긋는구나!

 

선생님 논문은 국어국문학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즈음 출판 사정이. 지방대학 출신의 책은 내줄 수 없습니다.”

간 선생인가. 자네도 알다시피. 그래 한 다섯 살 적은 사람으로 뽑기로 했지.”

또 썼나?”

맨 위의 문장은 첫 논문을 발표했을 때 한 젊은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며, 두 번째 줄은 책을 내려고 모 출판사에 전화 걸었을 때 편집장인 듯한 사내가 내게 한 소리다. 세 번째 문장은 이력서를 내고 1차 서류전형에 떨어진 다음날 모교 교수님과 통화에서 들은 답이며, 마지막 문장은 출간한 책을 한 교수님께 드렸더니 나온 말씀이다.

37살에 고등학교 선생님의 신분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였다. 송나라 어느 여승의 시처럼, ‘온종일 봄을 찾았어도 보지 못해 미투리 신고서 산마루 구름까지 가보았다(終日尋春不見春 芒鞋踏破嶺頭雲)’ 제제다사(濟濟多士)라 했던가, 참 잘난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절망이란 단어를 비로소 알았다. 세상 무서운 줄은 덤으로 알았고.

그러나 어쩌랴, 내 그릇이 고만한 걸. 산성인 액포(液胞)로는 파란장미를 만들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애당초 품삯을 요량한 것이 아니었건만, 선생이란 직분을 내놓고 매달렸건만, 늘 가위를 눌렸다. 포기라는 두 글자를 어느 순간부터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러다, 이 말씀을 만나 다시 설 수 있었다.

힘이 부족하다는 것은 가던 길을 그만 두겠다는 게 아니냐. 이놈! 지금 네 자신의 한계를 긋는구나(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

바로 논어옹야편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 염구의 대화이다. 염구가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부족합니다.”라고 하자, 공자는 저 말로 호되게 야단을 쳤다.(안타깝게도 염구는 후일 권력과 출세에 눈이 멀어 가르침을 저버렸기에 공자의 문하에서 파문을 당하였지만 저 말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물론, 이 말씀이 어디 내 것이련 만은 꼭꼭 눌러 써서 수첩에 넣었다.

 

 

# 쇠똥구리는 여룡의 구슬이 부럽지 않다

 

쇠똥구리는 스스로 쇠똥을 사랑하여 여룡(驪龍몸빛이 검은 용)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 역시 그 구슬을 가지고 저 쇠똥구리의 쇠똥을 비웃지 않는다(蜣蜋自愛滾丸 不羡驪龍之珠 驪龍亦不以其珠 笑彼蜋丸)”

연암 박지원의 낭환집서라는 글에도 보인다. ‘낭환이란 쇠똥구리다. 쇠똥구리가 여룡의 구슬을 얻은들 어디에 쓰며 여룡 역시 쇠똥을 나무라서 얻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내 재주 없음을 탓할 것도 없지마는, 저 이의 재주를 부러워하지도 말아야 하고 재주가 있다고 재주 없음을 비웃지도 말아야 한다는 연암 선생의 말이다. () 똑똑한 이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지둔(遲鈍)의 공()을 추켜세우는 말씀이다. 둔하지만 끈기 있고 느리지만 성실히 노력한 자라면, 비록 쇠똥구리일지라도 괜찮다는 뜻이다. 가끔씩 세상에 이름 석 자를 우뚝 남긴 분들 중에도 저런 이들이 꽤 있는 게 사실이다. 저런 이들이 우리에게 뚱겨주는 인생 훈수는 둔재라고 여기는 이들도 공(노력)을 쌓으면 된다.’라는 것이다.

재주 없는 내가 고전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혹 난쟁이 교자꾼 참여하듯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들 때나, 또 종종 재주 있는 이들이 내 책과 논문을 콩팔칠팔 허투로 내두른 소리라는 의심어린 눈초리를 보낼 때면 저 글을 꺼내본다. 물론 저 말씀들이 나에게 한 말은 아니지만, 학문에 비등점이 없음은 명백한 이치요, 재주 있는 이들만이 공부해야 한다는 진리 또한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가끔씩 나와 같은 사람을 경마장의 부진마정도로 이해하려는 분들을 본다. 딱히 빗나간 지적은 아니기에 무람없다. 내치지도 못한다. 심안이니 혜안이니 따지는 똑똑한 자의 눈이 아니라도, 21세기가 야생의 생존보다 치열한 세상이라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바지저고리가 아닌 다음에야 노력을 덜한 자로서 너그럽게 보아주십사하는 읍소를, 저 이가 생파리 잡아떼듯 쌀쌀맞게 거절해도, 방귀 폭 밖에 안 되게 몰강스럽게 낮잡아보아도, 감내해야함도 너무 잘 안다.

 

# 공자와 연암 선생에게 위안을 얻다

 

그러다가도 우리네 조선사람 몸에 각인된 3류대 출신은 정언명령이요, 코끼리적 사고의 폭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아니 들지는 않는다. 섭렵이 부족하고 적공이 부족하지만, ‘30여 년 전의 저 시절을 제외하고는 몇 배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다소 인생의 방정식을 어렵게 풀지라도, 고백한 바 학문적인 내공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육안(肉眼)만은 결코 녹록치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 소이연은 내가 평탄치 않은 길을 걸으며 본 수많은 멧갓과 이러저러한 수목(樹木)들에서 얻은 그 무엇, 결코 내남없이 갖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 태생부터 독하게 맘먹고 공부해도 머리가 안 따라주는 경우도 있고, 또 더러는 삶이 꼬여 남에게 뒤처지는 불운아도 셀 수 없는 세상이다. 결코 도수꾼의 도끼날을 정수리에 받는 소처럼, 그렁그렁한 맑은 치욕만을 삼킬 것만은 아니다.

각설하고, 나는 논어의 저 말과 연암 선생의 글을 손 가까이 두고 공부하다 절벽 같은 심정일 때면 늘 떠들추곤 한다. 그럴 때면 야박한 공부머리로 학문 언저리나마 맴도는 나지만 적이 위안을 받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학문이란 옷을 주섬주섬 껴입고 학자연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빙긋이 웃어 보기도 싶다. 고전을 포착하는 내 눈이 성글기 짝이 없지만, 몽당 붓 솔 하나들고 내 책상에 붓질하는 저러 이러한 이유다.

그러하여, 일자천금(一字千金)으로 보풀이 일도록 읽을 만한 글은 못 될지라도 갱생기(更生記)를 적바림하듯, 글을 쓰고 책을 읽으련다. 저 이들에게 과남(過濫)일 터이니 죄만(罪萬)할 뿐 일지라도.

-------------------------------------------------------------------------------------------

 

간호윤 교수

 

인하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고전문학 전문가로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 저서로 그림과 소설이 만났을 때, 당신, 연암,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등이 있다.

 

'삶(각종 수업 자료)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전 20패 0승?  (0) 2015.01.18
종강에 즈음하여----  (0) 2014.12.18
세월호 박지영 의사자 49재  (0) 2014.06.04
세월호 참사를 보며, 아니 쓸 수 없어.  (0) 2014.05.14
또 하나의 약속  (0) 2014.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