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2014. 7. 18. 13:22글쓰기/글쓰기는 연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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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천둥 소리가 요란하다. 그런데 번개도 벼락도 안 보인다. 천둥 치면 번개도 보이고 벼락도 쳐야하거늘----문득, 내 글쓰기 또한 이러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길거리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명색이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나이다. 몇 권의 저서도 내었다. 그런데, 그 책이, 아니 글이, 글은 있는데 의미가 없는----혹은, 의미는 있는데 글은 없는---아니, 어떠면 글도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왜 쓰는가? 내 글은 내 삶에 무엇이고 나는 학자로서 치열하게 글을 쓰는 것일까?

 

이 시대 글쓰기의 거장 김윤식 교수님은 루카치와 에토 준에게서 치열한 글쓰기를 배웠다고 하였다. 그는 나와 두 번의 인연이 있었고 모두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한 번은 서울대학교에서 중등교사 1급 연수를 받을 때이고 한 번은 중앙대 학회에서 내가 사회를 볼 때 연사로 오셨을 때이다. 서울대 연수에선 자신이 국어국문학과가 아닌 국어교육과이기에 열심히 공부했다는 내용이었고 학회에서는 백철 선생에 대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서울대 연수는 1993년 여름 경이고, 중앙대 학회는 2009년 가을 쯤이 아닌가 한다훤칠한 키에 카랑카랑한 목소리슬몃 입은 돌아갔지만 논리적인 내용, 사람들을 향한 차가운 시선은 그때나 이때나 여전하였다.  그의 글쓰기도 그러하였다.   

 

그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을 가슴 설레며 밤새워 읽었고  유일한 가족이던 자기 부인이 죽는 과정까지 글로 쓰고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게 되자 자살한 에토 준에게서 치열한 글쓰기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나이 76세에  <내가 읽고 만난 일본>이란 책을 출간하였다. ‘원로 국문학자 김윤식의 지적 여정이란 부제를 단 에세이였다. 그는 이 책의 출간을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으니, 유서 비슷한 게 아니겠소.” 저서가 150권인 80여 세의  ,  분이 노구를 이끌고 '유서!'를 쓰듯 글을 썼다는 말이다.  

 

그와 , 같은 국문학의 길을 걷지만 그 길은 분명 다르다그 분은 앞섰고 나는 뒤섰고그 분은 20대에 서울대 교수가 되었고 나는 50대에도 대학 강사임을 굳이 따질 필요 없다그 분은 그의 길을 가고 나는 내 길을 가는 것이 학문의 길이기 때문이다제 아무리 위대한 분의 길이라도 내가 따라가면 그것은 새로운 사유를 내놓아야할 학자로서 결격이다.


문제는  '그 분에게 있는 글쓰기의 치열함이 나에게 있는 것인가?'하는 글쓰는 이로서 근본적인 문제이다. '글쓰기의 치열함' 그것이 없다면 학자로서도 글 쓰는 이로서도 결격이다. 고전을 읽고 쓴다고 ‘고전독작가(古典獨作家)’라는 명칭도 만든 나이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소단적치'라하여 전쟁에 임하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하였다. 목숨을 건 글쓰기이다.

오늘, 난 천둥이 울리고 벼락이 치는 글쓰기를 하는가? 아니, 그런 글쓰기를 하려는 치열한 마음은 있는가?   아니면 글 따로 나 따로인 '서자서아자아(書自書我自我)'의 세상에서 나 또한 사이비  향원(鄕愿)식 글쓰기를 하는 것은 아닌가?

목숨을 건 글쓰기, 그러할 때 글에서 천둥이 울리고 벼락이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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