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나를 죽이다.

2014. 3. 8. 11:29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2014-03-08 06:38 작성시작

글이 나를 죽이다.
그러므로 아래 써 놓은 글은 의미없다. 써도 쓴 것이 아니기에 읽어도 읽은 게 아니다.

'글 따로 나 따로!' '서자서 아자아!'
연암 선생이 지극히 경멸했던 사이비 향원이다. 책 몇 자를 보면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어떻게 글은 저렇게 고상하고 멋진데 행동은 이렇게 치졸하고 저급할까?'에서 오는 책깨나 읽은 이들의 파르마콘적 인간군상이다.
글의 이중성, 치유와 질병, 진정과 가식을 모두 지닌 글을 꿰뚫어 본 플라톤은 파르마콘이라 하였다. 누군가 내 글을 '글 따로 나 따로'라고 한다면, '당신의 글은 의미없는 문자의 나열 아니요?'라고 묻는다면 난 어떻게 답할까? 노동한 손의 부산물, 아니면 근로한 뇌의 사생아.

 정녕 내 글은 나인가? 아니면 나 또한 내가 경멸하는 이들처럼 내 글과 내가 각성받이인가? 그래 파르마콘적 인간이 바로 나인가? 내 글을 읽은 누군가에게 의미없는 글이고 의미 없는 존재란 말인가?. 엿장수 가위질처럼 맘대로 궁벽스럽게 마음없는 생각을 잘라놓은 파리대가리만한 먹물덩어리란 말인가? 자고로 글 쓰는 이라면 임금 앞에서도 옷을 벗고 벌거숭이로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야하는 해의반박(解衣槃礴)이란 오연한 자존이 있어야하거늘 내 맘을 내가 거짓으로 그려 놓았단 말인가? 더욱이 내 글쓰기 책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의 첫 장이 '마음'인데.....간단없는 생각에 주저앉는 자괴감.

내 글이 나에게 묻는다.
"어이! 간 선생! 나를 글이라고 써 놓은 당신! 당신의 마음이 진정 나요? "

글이 무섭다.
아니, 이 글을 쓰는 내가 무섭다.

이쯤되면 글이 나를 죽인다. 


(쓰는 이와 글과 읽는 이 사이에 오는 오독 및 오해는 이 글과 상관 없을 터)

2014-03-08 06:56 이어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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