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리고 오감(五感)의 미래

2012. 10. 24. 09:44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오늘, 그리고 오감(五感)의 미래

 

문득, 걱정이 되었다!

내 미래가.

그래, 10년 후 -(부제: 개인과 삶과 사회-)이라는 책을 읽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33명의 석학들이 바라본 10년 후 한국”, “미래에 펼쳐지는 10년 후 세상등등 매스컴도 독자도 찬사 일색이었다. 내가 읽은 책 정보를 보니, ‘110인데 발행일로부터 불과 12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1쇄에 몇 부를 찍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하루에 1쇄 꼴로 찍었다는 수치이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내 미래는 위의 문장들과는 영판 달랐다. 책을 혹평하거나 매스컴, 혹은 33명의 석학이 내다 본 미래를 흠잡으려는 게 아니다. 오로지 보이는 것은 현재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물질문명이 출생시킨 변형체 직업이거나 인간성을 상실한 암울한 환경의 시각적 나열일 뿐이었다.(솔직히 말하자면 미래의 직업이라 내세운 것들도 이미 우리가 넉넉히 짐작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나열한 이러한 책이 저토록 한국의 지성체인 독서마당을 휩쓸 수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까닭은 분명 사람의 내일을 위한 사람을 위한 책이거늘, ‘사람의 오감이 보이지 않아서다. 사람의 미래이니 사람이 보여야하고 응당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으로 미래를 읽어야한다. 그렇다면 내남 없는 오감의 미래는 무엇일까? 우리를 앞서 살다간 역사 속 거인들이 찾아낸 것은 행복이라는 두 글자다. ‘행복은 온 몸으로 얻어낸다. 아이의 웃음에서, 어머니의 된장찌개에서, 사랑하는 이의 손길에서, 따뜻한 봄바람에서,.

죽을 때 행복한 기억은 얼마든 가져가지만, 물질은 어느 누구도 7자의 수의 한 벌이면 족하다. 인간과 행복, 수천 만 년의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 ‘행복만이 순수 그 자체로서 목적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동원할 것도 없이 이 인간의 오감을 통한 행복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가? 늘 오늘, 현재뿐이다. 우리는 내일과 미래를 절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내일은 오늘이 되고 미래는 현재가 될 뿐이다. 현재가 미래에 저당 잡힐 이유는 그래 없다.

내 독후(讀後)는 이렇다. ‘오늘의 물질문명이 까놓은 변형체 직업을 찾아 헤매느니, 난 오늘의 내 삶에서 오감을 통해 행복을 찾겠다. 한 끼 식사를 하며, 벗과 전화를 주고받으며,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 끝에서소소한 일상의 행복이야말로 10년 후 내 미래를 꿈꾸는 일이라 생각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헌납하는 제자들에게 키팅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을 즐겨라, 오늘을 잡아라! 오늘이 가면 다시 오지 않으리니! 카르페 디엠!’

 

2012.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