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평전>을 쓰다가

2011. 7. 3. 11:45글쓰기/글쓰기는 연애이다

며칠째 장맛비가 내립니다.

훗훗한 방 속, 눅진 책향이 빗소리를 타고 올라오는 비릿한 냄새와 함께 느긋이 파고듭니다.

내가 이런 날을 좋아하듯 연암을 좋아하는 것도 순전히 이기입니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 중 한 자리는 연암 박지원의 차지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사내의 전략적인 글쓰기와 재주도 좋지만 한계성을 지닌 유자儒者로서 제 스스로 몸을 낮출 줄 아는 인간이기에 더욱 좋습니다. 억지 밖에 없는 세상에 칼 같은 비유를 든 뼈진 말도 좋지만 스스로 삶 법을 빠듯하게 꾸리는 정갈한 삶의 긴장이 더 좋습니다. 연암의 붓끝에 완전한 사람이 없는[燕巖筆下無完人] 직필直筆도 좋지만 남루한 삶까지 원융무애(圓融無礙, 원만하여 막힘이 없음)하려는 순수성이 좋고 조국 조선을 사랑한 것이 좋고 그의 삶과 작품이 각 따로가 아니라는 점이 더 좋고 소설을 몸으로 삼아 갈피갈피 낮은 백성들의 삶을 그려낸 것이 더더욱 좋습니다.

책상에 앉아 이 사내의 <연암평전>을 씁니다. 아마 8월쯤 원고를 출판사(푸른역사)로 넘기고 내년 쯤 세상 빛을 보게 될 겁니다. 어리석은 내가 저 이의 삶 한 자락만이라도 잡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201173. 휴휴헌에서 <연암평전>을 쓰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