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

2011. 2. 25. 09:57글쓰기/글쓰기는 연애이다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

 

내 공부가 짧아서인지 모르지만, 배울 만큼 배운 박사니, 교수니 하는 분들, 물질에 영예에 위선을 동무삼고, 더하여 네편내편을 갈라 서로 바라보지도 못하게 높다랗게 담벼락을 쌓아놓았더군요. 나보다 학문적 내공으로 보나 인생으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열하고도 몇 뼘은 더 올라갈 분들이기에 한동안은 참 고민하였습니다.

당신이 써 놓은 그 아우라(Aura) 넘치는 글귀들, 하느님 버금가는 놓치기 아까운 말씀들, 그래 눈맛에 귀맛까지 여간 아닌 그 글과 행동이 영 각 따로이기에 말입니다. 세상의 풍화작용에 저 이들의 고담준론(高談峻論)이 맥없이 스러지는 것을 목도함은 뒤늦게 공부의 길로 들어선 나에겐 더없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書自書我自我)’라는 말을 알고는 고민에서 배추꼬리만큼 벗어났습니다. 그것만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몇 해 전부터 인문학의 위기란 말이 돌더군요.

요령부득이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 삶의 근간인 인문학이 부고장을 돌릴 판이니 살려달라는 소리 아닌지요. 한때 인문학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우리네 삶의 구원군 역할을 하던 시절이 있었지마는 이미 과거지사입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인문학이나 인문학을 하는 사람을 더 이상 우리 사회의 해방군으로 보지 않습니다. 아니, 이제는 인문학자들의 자조(自嘲)와 자긍(自矜)의 자웅동체 용어 남산골샌님조차도 웃음가마리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래, 내가 보기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교조적 지식의 마당쇠를 자임하고 나선 인문학자들이 더 이상 할 소리는 아예 아니라 생각합니다. 인문학의 위기를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은 개도 웃을 일이지요.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 아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