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장 후보자 사퇴의 변을 보고

2011. 1. 13. 12:19글쓰기/글쓰기는 연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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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는 날마다 목욕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먹칠하지 않아도 검다(鵠不日浴而白, 烏不日黔而黑)”

감사원장으로 내정된 이가 사퇴의 변으로 인용한 장자<천운> 편의 한 구절이다. 고전의 명문장을 저러한 경우에 이용하다니-, 고전(古典)도 이쯤이면 고전(苦典)이 된다. 본인이 한 달에 1억 원씩 번 것이 억울하다, 그래 자신은 청렴개결하다는 사퇴의 변으로 저 말을 끌어 온 것도 그렇거니와 영판 장자내용과도 안 맞는다.

저 문장은 노담(老聃노자)이 공자(孔子)의 인의(仁義)를 못 마땅해 꾸짖으며 인유한 구절이다. 내용을 잠시 짚자. 공자는 그렇게도 입버릇처럼 외는 인의(仁義)’를 노담에게 묻는다. 노담은 당신이 그렇게도 끼고 사는 인의는 오히려 인간의 마음을 가장 어지럽게 만들뿐이라며 냉랭하다. 그리고 인의 대신 자연스럽고 소박한 무위의 덕을 강조하며 이렇게 일러준다.

 

고니는 날마다 목욕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먹칠하지 않아도 검지요. 이처럼 검고 흰 것은 태어날 때부터 소박함이니 검다 희다 따질 것도 없고 명예가 있다느니 없다느니 시끄러운들 명예를 넓힐 수는 없을 겝니다.

(夫鵠不日浴而白烏不日黔而黑黑白之朴不足以為辯, 名譽之觀不足以為廣)”

 

여보시오. 공자님, 어디 하얀 고니와 검은 까마귀가 날마다 칠을 하여 색깔이 그렇겠소. 그저 희고 검게 태어난 대로 아니오. 그러니 당신도 날마다 인의만을 붙들려하지 마세요. 자꾸 인의, 인의하니 인의에 매이잖소.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 자연스럽게 무위자연(無爲自然)대로 생활하면 인의의 삶이 되지 않겠소.’라는 말 아닌가.

 

감사원(Board of Audit and Inspection, 監査院:행정기관과 공무원의 직무에 대한 감찰을 목적으로 설립된 대통령 직속의 국가 최고 감사기관)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상징이 조선시대 어사들이 들고 다니는 마패(馬牌)였다. 또 감사원 로그는 눈과 귀를 조합한 것으로 국민의 눈으로 냉철하게 보고, 국민의 귀로 바르게 듣는 마음가짐으로 국가예산의 올바른 집행과 공직자의 올바른 기강과 행정행위를 유도함으로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관이 되려는 우리 원의 의지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저이의 품행이 이미 저러한 감사원장감이 아니라고 여기저기서 대놓고 말한다. 구태여 장자의 한 구절을 내 논에 물대기식으로 끌어온들 본인이 깨끗해질 리 만무하다. 고전의 명구도 욕되고 본인은 더욱 욕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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