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의 수사학.

2008. 9. 4. 16:07글쓰기/이 세상은 사각의 정글이 아니다!

3의 수사학.

-‘100전 100패의 사내(여인인지도 모름)’에게


우연히 라디오를 들었다.

오늘 신문에 보도된 대학 진학률 이야기다.

“83. 8%(작년엔 82. 8%)가 대학에 진학한답니다. … 대학원 졸업자도 2000년 이후 … 고학력 인플레이션입니다.…”

아나운서의 애처로운 목소리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입사시험에서, ‘토익 900점, 대학 평점 4.3, 4개의 자격증…이런 성적인데도 서류전형에서 100전 100패를 당하였답니다. 이유는 지방대 출신이기 때문이랍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

우리 사회는 저 지방대 출신 중 상당수를 3류라 비하합니다.


가위․바위․보! 이어지는 삼세번!

하나, 둘, 셋, 찰칵!

佛․法․僧 三寶, 草家三間, 三政丞, 天地人, ‘3원칙’, ‘3단계’, ‘3대 과제’ ‘3분 통화’ …

완벽, 편안함, 정결, 두루 갖춤, 종결, 우주 따위를 나타내는 ‘3:삼’의 효용성이다.


조선 후기 우리 문학사에 굵직한 선을 긋고 간 연암 박지원을 알 것이다. 연암은 스스로를 ‘下士(3류)’라 하였다. 결코 삼류가 아닌 저 이가 삼류라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삼류에 대한 겸손이요 아량이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자기다짐이다.


세계적으로도 이 ‘3’을 성스러운 숫자로 여긴다. 프랑스어로 “뜨레 비엥(Tres bien )”이라는 말이 있다. “훌륭하다”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으니 여간해서는 듣기 어렵다. 영어 “베리 굳” 보다도 훨씬 칭찬의 강도가 높다고 한다. 여기서 ‘뜨레(Tres)’가 바로 뜨레스, 즉 3이다.


3은 이렇듯 우리의 삶에 완전성과 도전성, 정서적 안정감과 함께 승자의 아량까지 담고 있는 너그러운 용어요, 한 번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라는 꿈의 용어이다. 이렇듯 ‘3’과 ‘인간’이라는 연계성을 생각한다면, 3은 우리 모두에게 이상적인 용어임에 틀림없다.

 

인생의 방정식을 꽤 어렵게 풀고 있는 저 ‘100전 100패의 사내(여인인지도 모름)’에게 서류전형조차 떨어진 이유를 ‘競馬場의 不進馬’ 정도의 우격으로 들이대서야 어디 쓰겠는가? ‘지방대생’ = ‘쓸모없는 무능한 사람’이 정녕 정언적 진술이란 말인가? 언제부터인가 ‘삼류’와 ‘일류’라는 사회적 체득이 이토록 ‘우리 대한사람의 몸에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각인’되었단 말인가?


‘일류’를 놓고 보자면, 이미 ‘대학을 졸업한’ 저 ‘100전 100패의 사내(여인인지도 모름)’에게는 획득 불가능한 가치’요, ‘불가역적 상황’이다. 다시 저 시절로 돌아 갈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 ‘토익 900점, 대학 평점 4.3, 4개의 자격증…’으로 저 시절을 보상한 셈이다.


3류를 만회하려 노력한 저 ‘100전 100패의 사내(여인인지도 모름)’에게 ‘3’ 혹은 ‘삼류’는 결코 자기성장을 멈춘 <양철북>의 오스카적 용어가 아니다.


2008. 9. 4.

간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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