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자색 공자공~허자허 실자실色自色 空自空~虛自虛 實自實

2008. 8. 13. 10:26고소설비평용어/고소설비평용어

 

자색 공자공~허자허 실자실色自色 空自空虛自虛 實自實 : 이 소설작법류 용어는 󰡔�광한루기󰡕� 제8회에 보인다. ‘색자색 공자공色自色 空自空’은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체(색)는 공이라는 말로 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또 ‘허자허 실자실虛自虛 實自實’이라는 말은 의서醫書에 나오는 말로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것을 말하니, 이는 모두 깨달음을 일컫는 말이다.

즉 여기서 평자는 ‘허를 허’로만 알고 ‘실을 실’로만 아는 문장가를 비판한다. 곧 문장가란 ‘허한 듯하나 실한 문장을 운용하고 실한 듯하나 허한 문장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지, 격식에 얽매여서 실을 색으로만 허를 공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를 문장으로 환치하면 글쓰기에 좋은 문장은 없는 것이고, 다만 상황에 따라서 글의 법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간파한 문장의 운용에 대한 비평이다.

이와 같은 문장의 운용에 대한 기술은, 연암의 「소단적치인」에 나타난 글쓰기 법과 유사한 것으로 또한 문장에 대한 개방적 사고를 지니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깨달았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 깨닫지 못했어도 깨닫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라고 한 것이다(‘허실’에 관해서는 이지, 홍승직 옮김, 󰡔�분서󰡕�, 홍익출판사, 1998, 189~193쪽 참조).

좀더 구체적으로 논의를 진전시켜 보자.

소설을 ‘허구적 욕망을 담은 가정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소설을 소설로만 볼 것이 아니고 나를 소설 속에 넣고 볼 것이며, 현상계와 소설계를 아울러 볼 줄 아는 변증법적 지양止揚의 세계를 지향志向해야 한다. 인생은 유라는 삶의 세계 속에 늘 존재하는 죽음이라는 무를 향해 간다. 인생을 표현한 소설 또한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소설이 지향하는 세계는 허도 실도 아닌,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깨달음, 즉 지양의 세계이다. 결국 ‘색자색 공자공~허자허 실자실’은 ‘허와 실의 상생’을 작가는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설작법 용어이다.


그러므로 문장을 잘하는 사람도 여러 가지 도구를 다 펼쳐 놓은 다음에 마음대로 쓰면 되는 것이다. 만일 고정된 격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다만 겉포장만 일삼을 뿐이라면, 색은 그냥 색일 뿐이고 공은 그냥 공일뿐이며, 허는 그냥 허일뿐이고 실은 그냥 실일 따름이다. 어떻게 감히 대규모 음악이 조화롭기를 바라고, 훌륭한 음식이 고른 맛내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내가 말하는 깨달음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깨달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깨달았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 깨닫지 못했어도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다[故善爲文者 諸具畢張隨意取用可也 若不離乎圈套之中 而徒事塗抹而已 則色自色空自空 而虛自虛實自實也 安敢望於和大樂 而調大羹乎 此非吾所爲悟也 凡吾所爲悟者何也曰 悟而不悟 不悟而悟 是悟也]. (수산선생, 󰡔�광한루기󰡕� 제8회 회서비평, 성현경 외, 󰡔�광한루기 역주 연구󰡕�, 박이정(영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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