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인간, 그리고 의양지학과 자득지학

2008. 8. 12. 17:54글쓰기/이 세상은 사각의 정글이 아니다!

 

 

컴퓨터와 인간, 그리고 의양지학과 자득지학


컴퓨터는 인간보다 백만 갑절 더 기억을 합니다.

그래도 인간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컴퓨터는 쇠로 되어 마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충(忠)’이라는 말은 공부하여 알지만, 누구나 ‘국가에 충직한 행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충이란 행동의 수원지는 말할 것도 없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선인들의 말씀으로 풀이하자면 아는 것은 ‘의양지학’이요, 행동은 ‘자득지학’입니다.


선인들은 공부에 의양지학(依樣之學:모방)과 자득지학(自得之學:독창)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의양지학은 머리에 넣으면 된다지만, 자득지학은 의양을 거쳐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즉 ‘충(忠)’이라는 낱말의 뜻이 ‘국가 따위에 충직함이란 행동’임을 아는 것은 ‘의양’에 해당되지만,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자득’입니다. 하여, ‘자득지학’은 마음공부인 셈이지요.


이 마음공부를 고상하게 말하여 인문학(人文學)이라고 칭합니다. 즉 인문학이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느냐?’에 대한 대답을 마음으로 구하는 학문입니다. 이것은 결코 컴퓨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기억을 제 아무리 잘한들, 행동을 할 줄 아는 마음, 되풀이하여 자득의 경지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 공부는 컴퓨터보다도 못한 머리로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머리(뇌)에는 아픔을 느끼는 기관이 없다합니다. 꼭 쇳덩이로 된 컴퓨터와 다를 바 없는 셈이지요.  아픔을 느낄 줄 아는 마음, 그래 바른 행동을 할 줄 알게 만드는 것이 공부입니다.

의양지학이 아닌 자득지학을 하려고, 그리하여 바람직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려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 공부는 마땅히 ‘마음공부’여야 합니다.  ‘모 대학을 나와야 만이 1류’임을 만고불변의 진리인양 믿는다는 것은 학문의 근간을 뒤흔드는 어리석음입니다. 우리 조선인이 숭앙해 마지않는 ‘왜곡된 머리공부의 산물’이지요. 

 

‘모 대학을 나와야만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은 ‘왜곡된 1류 의식이 낳은 이미지’일 뿐입니다. 대학의 이미지가 곧 그 사람 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본과 실재의 차이점을 모른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시뮬라시옹의 폭력’이라고나 할까요.

 

지금껏 나는 내 삶의 반을 인문학과 함께 했습니다.  

자득지학하는 이를 본 것은 한 손만으로도 두어 가락은 남습니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는 의양지학조차도 어려우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가 지은 책 《시뮬라끄르와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에서 나온 개념이다. 시뮬라시옹은 시뮬라끄르가 작용하는 것을 말하는 동사이다. 시뮬라끄르(프랑스어:simulacre, 영어,그리스어:simulacra)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모사본이다. 장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이 시뮬라끄르인 모사본이 때로는 원본보다 더 생생하게 인식된다고 하였다. 원본이 공부는 대학생이라면, 모사본은 대학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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