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여론

2008. 8. 6. 18:55고소설비평용어/고소설비평용어

 

여론甘蔗茹論 : 소설을 맛으로 치면 어떨까?

티베트 불교의식 가운데 ‘내공內供(nang-mchod)’이라는 것이 있다. 예배할 때 신들의 오감五感을 즐겁게 하는 일이라 한다. 조용한 신들에게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을 위하여 각각 거울․현악기․향료․설탕과 토르마(gtor-ma : 제물용 과자)․비단 등으로 공양한다하니 발상법이 재밌다.

우리가 여러 식품을 맛보듯, 독서를 할 때 매운맛, 신맛, 짠맛을 느낄까?

김시습은 제소설시비평에서 ‘사탕수수처럼 달콤하다’고 하였다. 소설을 맛 좋은 음식에 비유하는 ‘가찬론佳饌論’이다.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엽렵한 소설 감상 미학이다.

김시습은 우리 고소설비평사에서 최초로 보이는 감각적 테러리스트였다. 그의 제소설시비평은 소설의 문학적 효용을 극대화하였다. 그것은 감각을 이용하는 ‘미학적美學的 소설비평’이요, 감수성을 활짝 열어젖뜨리고 소설을 읽는 ‘심리적 쾌락心理的 快樂’이다.

그는 󰡔�전등신화󰡕�를 읽은 감상을 “처음에는 헛된 소리나 나중에는 뒷맛이 있고 아름다운 경지는 사탕수수처럼 달콤하네[初若無憑後有味 佳境恰似甘蔗茹].” (김시습, 「제전등신화후」 󰡔�매월당문집󰡕� 하, 계명문화사, 1987, 189쪽)라 하였다. 흔히 감정이 고조되어 자기 자신을 잊고 도취 상태가 되는 현상을 엑스터시(Ecstasy)라 한다. 소설을 읽은 감흥이 이 정도면 그러한 황홀경에 못지않을 듯하다.

사실 잘 지어진 소설에는 인간의 욕망․질투․사랑․삶이 용해되어 있지 않은가. 어찌됐건 강퍅한 김시습의 성정으로서는 더없이 감성적인 용어선정이다.

김시습의 삶은 팍팍하였다. 어떻게 보면 그의 소설평은 이러한 삶에 대한 해원解冤이었는지도 모른다. ‘맛[]’이라는 체험적體驗的 감각과 소설을 읽은 추상적抽象的인 예술적 감흥을 결합한 비평은 김시습의 이 제소설시가 처음이다.

특히 소설류를 읽은 정서적 감흥을 사탕수수 맛에 비유하는 ‘감자여론甘蔗茹論’은 성현의 글에서도 볼 수 있다. 성현(成俔, 1439~1504)이 1496년 쓴 「촌중비어서村中鄙語序」에는 이 용어가 ‘여담자미如啖蔗味’로 나오니, 이 역시 소설을 읽은 흥취를 사탕수수에 비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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