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양론(1)

2008. 8. 1. 13:57고소설비평용어/고소설비평용어

 

론技 : 기양伎癢이라고도 한다. ‘발싸심’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고 들먹거리며 애를 쓰는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정신의학적으로 창작행위를 일종의 ‘심리적 자위행위自慰行爲’라 하는데 기양이 바로 이러한 용어이다. 소설의 급소를 예리하게 파고드는, 전승력 또한 대단한 비평어였다.

이 고소설비평어는 고소설을 저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적 이해를 하는데 상당한 가치를 부여한다.

하버드 대학 교수로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의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란 책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 행동의 유전적인 중요성을 중시했다. 요점은 이렇다.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하여 잠시 만들어 낸 매개체에 불과하다.”

DNA야 말로 진정한 생명의 주체라는 말이다. 만약 소설 역사 또한 사회생물학으로 본다면 ‘기양’이 바로 DNA, 즉 소설의 주체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진정 소설이 욕망의 구현체라면 기양은 바로 그러한 욕망 부추기기의 가장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소설비평어는 기양의 각주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소설에 연민을 두고 곱씹는다면, 소중화小中華를 꿈꾸던 문이재도文以載道라는 고집스런 중세의 폭력에 기양으로 대항하려는 안쓰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이 ‘기양론技癢論’은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태평한화골계전서太平閑話滑稽傳序」에 처음 보인다.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서」에는 당시의 소설류의 비평을 알 수 있는 여러 문제가 제기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기양이다. 「태평한화골계전서」는 서거정과 객, 두 사람의 대화로 󰡔���태평한화골계전󰡕���을 지은 것에 대한 정당성을 유도하는 글이다. 기양은 서거정이 󰡔���태평한화골계전󰡕���을 지은 것에 대해 객이 다음과 같이 꾸짖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한갓 부지런하게 맹랑한 이야기를 주워 모아 호사가들의 웃음거리로 제공하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광대들의 우두머리일 따름이다. 세교에 무슨 도움을 주겠는가? … 일찍이 마음을 움직여 본성을 참지 못하고 기괴한 이야기에 몰두하는 것은 오직 이 기양 때문이다[徒屑屑焉 掇拾孟浪 爲好事者解頤 此則俳優之雄長耳 何補於世敎乎 … 曾不動心忍性 馳怪騁奇 惟技是癢]. (서거정 저, 이내종 역주, 󰡔���태평한화골계전󰡕���, 태학사, 1998, 15쪽)


객의 문학론은 세교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심성을 바르게 하지 않고 기괴한 이야기를 즐기는 기양에 의한 글을 껄끄럽게 바라본다. 중세를 살았던 상식인常識人들, 문의 엄숙주의를 추종하는 그들로서는 당위적인 발언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꼭 이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몇 안 되는 심성적 동기로 인정하는 발언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용어에 대해서는 제법 호감어린 반응을 보였다. 아마도 저술의 1차적 욕망을 인정 안 할 수는 없었나보다. 하기야 중세의 그들이라고 왜 표현하고픈 마음이 없겠는가. 근지러움, 가려움이라는 게 긁으면 긁을수록 더한 법 아닌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썼다’ 이거다.

이러한 것은 홍서봉(洪瑞鳳, 1572~1645)의 「속어면순발續禦眠楯跋」에서도 찾을 수 있다. 홍서봉은 󰡔���속어면순󰡕���에서 기양을 들어 성여학의 글을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혼탁한 세상을 당하여 거친 들에 자취를 숨기고 맹랑한 일에 마음을 의탁하여 기분을 푸는 도구로 삼았으니, 어찌 문인이 여가에 하는 일이요, 자신의 재주를 드러내는 기양이 아니겠는가?[値世昏濁 遯迹荒野 托意孟浪之辭 以資消遣之具 豈非文人之餘事 薈之技癢] (홍서봉, 「속어면순발」 󰡔���국문헌설화전집󰡕��� 7, 태학사, 1984, 188쪽)

이 글은 외설적인 󰡔���속어면순󰡕���에 대한 책망보다는 감싸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기양을 제법 저술 동기로 이해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기양이 패관류와 소설의 저술 동기로 적잖이 오르내렸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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