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2008. 7. 17. 18:54글쓰기/이 세상은 사각의 정글이 아니다!

사이비

 

조선 최고의 문호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 ~ 1805)은 울울한 마음의 병이 걸렸다고 한다.

연암의 처남인 이재성李在誠이 지은 제문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면 이렇다.


最所不能                가장 참지 못한 것은

酬接鄕愿                두루뭉술 인물을 상대하는 일.

曲鍼腐芥                굽은 바늘 썩은 겨자씨 무리들

胥致尤怨                모두들 너무나 미워하였네.



이재성이 말한 ‘두루뭉술 인물[鄕愿]’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아첨하는 짓거리를 하는 자’이다. 이 말은 《맹자(孟子)》의 〈진심편(盡心篇)〉과 《논어(論語)》의 〈양화편(陽貨篇)〉에 나오는데, 공자는 “향원은 덕의 도둑이니라(鄕愿 德之賊也)”라고 하였다. 즉 덕이 있는 체하지만 실상은 아첨하여 모든 것을 좋다고 넘어가기에 덕을 훔치는 짓이라고 한 것이다.

맹자(孟子)》의 〈진심편(盡心篇)〉의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맹자에게 제자 만장(萬章)이 찾아와선 말하였다.

“한 마을 사람들이 향원을 모두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면 그가 어디를 가더라도 훌륭한 사람일 터인데 유독 공자만 그를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이유가 무엇인지요.”

맹자는 이렇게 답한다.

“그를 비난하려고 하여도 비난할 것이 없고, 일반 풍속에 어긋남도 없다. 집에 있으면 성실한 척하고 세상에서는 청렴결백한 것 같아 모두 그를 따르며,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요(堯)와 순(舜)과 같은 도(道)에 함께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 한 것이오.

‘덕을 해치는 사람’ 즉 ‘사이비 군자’란 뜻이다.

공자는 이를 두고 “나는 사이비한 것을 미워한다[孔子曰 惡似而非者]”라고 하셨으니, 외모는 그럴듯하지만 본질은 그렇지 못한, 즉 겉과 속이 판연히 딴판이라 그러한 것이다. 향원은 이렇듯 올바른 길을 걷지 않고 시류에 일시적으로 영합하며,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거나 말로 사람을 혼란시키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이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자들을 스노브(俗物:snob)라고 부른다.

이러한 ‘향원’류들, ‘삼류’란 용어는 이럴 때 쓰는 말 아니겠는지요.

 

 

박지원朴趾源 초상∥

박지원의 손자인 박주수朴珠壽의 그림

어글어글한 눈, 눈초리가 올라간 것하며 오뚝한 콧날과 턱수염이 매서운 인상을 준다.

그러나 넉넉한 풍채에서 풍기는 기운은 대인처럼 우람하다. 󰡔��과정록󰡕��에 보이는 아들 종채의 기록과는 얼굴 모양이 다르다. 실상 박주수는 할아버지인 연암을 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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