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대학고(1)

2008. 7. 10. 20:31글쓰기/이 세상은 사각의 정글이 아니다!

<삼류대학고>


나는 개인적으로 대학의 반은 줄어야하고 그 중 3류대가 먼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20년 전 만해도 고등학교만 잘 나오면 취직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말 그대로 대학은 큰 공부를 하는 곳이었지 직업훈련소가 아니었고 대학 들어가기가 어려워서인지 사실 3류대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요즘처럼 수통羞痛하지는 않았다.

지금 이렇게 된 것은 대학이 돈벌이가 잘되어 마구잡이로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나는 전적인 책임은 그 대학의 교수, 직원, 재단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며 가만히 보니 일류대학에는 다른 대학이 갖지 못한 7가지가 있는 것 같다.

내 나름대로 ‘일류대학칠유론一流大學七有論’은 이렇다.

첫째, 동문회가 있다.

동문회는 졸업생과 재학생을 이어주는 소통의 장이요, 곁거니 틀거니 학교를 적절히 견제하는 곳이다. 동문회를 통하여 재학생들은 선배들을 만나 자기의 미래에 대한 역할모델을 찾을 수도 있으며 또 졸업생은 후배를 이끌고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사회 경험을 학교에 쓴 소리로 전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대학은 어슷비슷한 동문들끼리도 서로 부실한 모습을 지켜봤던 과거 때문에 만나기도 싫고 솔직히 동문회를 한다 해도 떳떳이 나갈만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 물론 학교도 동문회를 활성화하려는데 별 관심이 없다.

둘째, 선생, 학생, 교직원 간에 신뢰가 있다.

교수와 학생은 사제師弟 간으로 누가 뭐래도 내 선생, 내 제자여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대학은 선생은 학생을 실력 없다 낮추어 보고 학생은 선생을 치어다만 보고 교직원 또한 자리만 지키고 앉아 시간만 세니, 부서진 상다리 모양 어근버근하다. 이러니 혹 보이는 술명한 학생은 호시탐탐 편입을 생각하거나 대충 졸업만 하려들고 선생은 연구를 안 해도 되니 집에 갈 궁리만 하고 교직원은 몸보신만 염려하지 학교발전은 아랑곳없이 무정세월無情歲月이다.

셋째, 꿈이 있다.

그렇지 못한 대학의 안내책자에 크게 써 놓은 “세상을 바꾸려면 ○○○대학을 보라”나 “○○대학에서 꿈과 미래를”, “○○대학의 날개짓이 세계를 바꾼다” 따위의 찬란한 수사는 한낱 학생을 끌어 모으기 위한 유치한 언술言術이요, 수석침류(漱石枕流,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으로 억지식의 억지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까마귀의 대가리가 희어지고烏頭白’, ‘말에 뿔이 난다면馬生角’ 모를까? 4년간 그렇지 못한 대학을 다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꿈이 사라진다.

삼류대 총장에게 입학허가서를 받는 순간 우리 사회는 ‘삼류’라는 주홍 글씨로 판단하여 버린다. 그것은 ‘앞으로 너는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장이다.

넷째, 애교심이 있다.

그렇지 못한 대학은 몸과 가족은 서울에 있으면서 저 지방에 가서 애제자愛弟子를 인재로 만들겠다고 하는 선생, 힘 있는 웃사람 뒤에 붙어 교수와 똑 같은 지위라고 우겨대는 직원, 그들에게 학교는 단지 직장일 따름이다. 학생은 졸업한 뒤, 이력서를 쓰고 고배를 들이킬 때마다  사회 탓으로 돌리다가는 급기야 그 대학을 다닌 자기 자신을 한恨한다. 애성이 나니 경우에 따라서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하기도하고 심지어는 다른 대학 출신이라고도 한다. 정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는 소수의 졸업자는 다른 학교 석사과정에 들어가 돈으로 마음을 달랜다.

다섯째, 대학원이 있다.

대학원은 학교가 학문의 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존재증거이다. 한밤중까지 환히 불이 켜진 대학 건물은 이곳이 진리 탐구의 장임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대학은 기껏해야 입학도 졸업도 모두가 돈이 해결해주는 얄궂은 대학원만 있다. 학교는 돈 벌고 선생은 수업 부담 없고 학생은 가방 끈 늘이기요, 진급용이다. 학문적 긴장감이 흐르는 진리 탐구와는 거리가 머니 이곳은 더 이상 대학원이 아니다.

여섯째, 캠퍼스에 학생들이 있다.

그렇지 못한 대학은 일 년에 두 차례나 그 좋은 시설이 근 5~6개월 펑펑 논다. 선생은 집에서 쉬고 학생은 놀러 가고 직원은 단축 근무를 한다. 선생은 그동안 밀린 논문을 쓰는 한편 방학 중 학생의 생활을 점검하고 직원은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가운데 신학기에 운용될 학생들을 위한 커리큘럼에 골몰해야 한다.

물론 학생들은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 넣으려 도서관을 찾고 선생의 연구실문을 두드려야 한다. 그렇지 못한 대학이기에 들메끈을 고쳐 매고 일류대학보다 더 바지런을 떨어야 한다.

일곱째, 공부하는 학생, 가르치는 선생이 있다.

그렇지 못한 대학은 선생은 공부를 안 시키고 학생은 공부를 안 한다. 선생은 ‘어리보기들 학문은 해서 무엇 하나’이고 학생은 적당히 시험 때만 공부한다. 학교 역시 학생 모집에만 열을 올릴 뿐 공부 잘하기 캠페인은 캐비닛 속에서 잠든 지 오래다. 학교 분위기 자체가 저토록 제 각각 엇결이니,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는 방법을 안내해 줄 사람도 없다. 전공으로 먹고 사는 경우는 교사와 학원 강사로 나간 몇 명 정도의 졸업생뿐이다. 다른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이 몇 년에 한 두 명 정도 있지만, 그나마 텃세와 체계적인 학습부족, 그리고 학문동료간의 멸시로 좌절하고 마니 참 불호광경不好光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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