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윤은

2008. 7. 10. 15:02글쓰기/이 세상은 사각의 정글이 아니다!

나는 곧잘 학생들에게 “큰 황소 한 마리 옆에 놓고 최선을 다하라”고 말합니다. ‘황소론’ 운운은 물론 나에 대한 다짐장을 놓는 것이기도 하지만, 공부를 하며 ‘재승박덕’이라는 다소 고통스럽고도 강고한 틀을 하나 둘 읽었을 때부터입니다.


느릿느릿 걷는 걸음새가 다소 어리석고 둔해 보인다고 호가 났지만, 날이 저물녘엔 또 어제만큼은 이르는 것이 황소입니다. 나는 황소걸음일망정 선택한 길을 후회하지 않고 걸으려 오늘도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幸福으로 가는 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저러하여 혹 ‘행복’이라는 것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길처럼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나는 분명 행복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분으로 느릿한 발걸음이기에 이름 모를 풀꽃에서 밀려오는 향훈도 맡고 굽은 소나무 가지도 어루만질 수 있습니다.


가끔씩 나와 같은 사람을 ‘競馬場의 不進馬’정도로 이해하려는 분들을 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우리네 조선사람 몸에 각인’된 ‘3류대 출신’이라는 정언명령이요, 상식의 폭력입니다. 섭렵이 부족하고 적공이 부족하지만, ‘20여 년 전의 저 시절’을 제외하고는 몇 배의 노력을 경주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인생의 방정식을 어렵게 풀지라도, 고백한 바 학문적인 내공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肉眼만은 결코 녹록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소이연은 내가 평탄치 않은 길을 걸으며 본 수많은 멧갓과 이러저러한 樹木들에서 얻은 ‘그 무엇’은, 결코 내남없이 갖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에게 공부라는 것은 그렇게 ‘저들의 몸과 기억에 봉인된 명령코드를 해체하는 작업’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3류라 부르는 지방소재 순천향대학 국문과 1회 출신입니다.


한때는 순천향인으로서는 ‘내가 가는 길이 곧 순천향 국문과의 역사’라는 방자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중등교사를 거쳐 대학원에 진학하며 이러한 생각은 철저히 부서졌습니다. 학계 사람들은 늘 제 탯줄이 순천향으로부터 비롯됨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고도 집요하더군요.


그러던 차 모교에 자리가 났습니다.


원서를 냈습니다.


1차 서류전형에서 떨어졌습니다. 모교의 선생님들은 자신들과 같은 2류를 원했습니다.


걷고, 또, 걸었습니다.


걷고, 또, 또, 걸었습니다.


도봉산을 1년 넘게 올랐습니다.


저 대학을 미워하고 저주하였습니다.


저 대학으로부터 멀어지려고 온갖 애를 썼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3류, 3류대 출신…3류, 3류대 출신…3류, 3류대 출신…,



하다보니, 이런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1류…, 1류…, 1류…, 1류…,


2류…, 2류…, 2류…, 2류…, 2류…,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1류 몇을 제하면 …, 모두 2류, 3류였습니다.’


결코 부끄러워할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2,3류는 그렇게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그냥 보통사람이었습니다.


또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 대학이 내 학문의 '胎盤'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내가 변해야한다.’




저는 ‘종소리는 때리는 자의 힘에 應分하여 울려 퍼진다’는 절대 순수를 믿으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