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16) 희담민막(喜談民瘼), 분노하라! 그래야 세상은 변한다.

2022. 8. 22. 18:57신문연재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16) 희담민막(喜談民瘼), 분노하라! 그래야 세상은 변한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까닭은,

민공어모신(民工於謀身,백성이 제 몸만을 생각하여)

불이막범관(不以瘼犯官,관리에게 대들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는 매우 평화로우면서 강력하고 문화는 세계를 선도하면서 주체성이 있고 국민들은 교양 있으면서 행복한 나라, 이 땅에서 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대한민국을 꿈꾸지 않을까. 이 글 또한 이러한 나라를 지향한다. 그러나 현재 신문기사 내용은 이렇다. <주 위원장은 “늘 보면 장난기가 있다”면서 “그런데 언론이 큰 줄기를 봐 주라”고 했다. 그는 “여러분들 노는데, 우리가 (그때) 다 찍어보면 여러분들 나온 게 없을 것 같나. 작은 것 하나 가지고 큰 뜻을 그거 하지(해하지) 말고 크게 봐 달라”고 강조했다.> '주 위원장'은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이요, '장난기가 있는 사람'은 수해 현장에서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며 웃은 국민의 힘 의원이요, '여러분들'은 이를 보도한 기자들이다. 국민들이 수재로 인하여 죽고 이재민이 되었는데 비 더 오라는 말이 '장난기'요, 보도한 기자들도 '작은 허물'쯤은 있지 않느냐는 궤변(詭辯) 중 궤변이다. '그야말로 말마디마다 야만적이고 고약한 악취를 풍긴다'로 쓰고 싶다. 하지만 국민이 선출한 대의기관이 국민의 믿음과 신뢰를 저버린 말이기에 고상한 표현보다는 '귀접스런 행태'가 더 적절하다.

이런데도 어떻게 분노할 줄 모르는가? 이쯤 되면 “원님은 노망이요, 좌수는 주망이요, 아전은 도망이요, 백성은 원망”이라는 <고본 춘향전>에 보이는 글귀와 무엇이 다른가? “극단적 보수주의자는 감정이입 체계가 덜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보수적 도덕체계는 타인의 공감과 돌봄에 의존하지 않고 타인에게 감정이입하거나 책임을 지지도 않고 나 자신의 이익에 봉사하는데 중점을 둔다.”(조지 레이코프 저, 유나영 옮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2015, 96~97쪽) 조지 레이코프의 글이 신경과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했기에 다소 이해가 간다마는, '자칭 보수'라는 저러한 사람들의 퇴행적 말과 행동 앞에서 국민의 자존심은 처참히 무너지고 저들 때문에 민주 국민으로 누릴 당연한 권리도 박탈당한다.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57980

 

백성 앞에 서려는 자는 언행을 삼가고 삼가야한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선생은 벗 홍대용에게 준 편지에서 “겨우 한 치 명예를 얻으면 이미 한 치의 흉하적을 불렀다(纔得寸名 已招尺謗)”고 벼슬길을 경계하였다. 그런데도 저들은 호화로운 붉은 관복을 입고 허리에는 붉은색과 보라색의 인끈을 두르고 금관자와 옥관자를 주렁주렁 달고 거만한 태도로 단상에 올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장광설을 한다. 묻고 싶다. 저 관용어가 이 나라의 주권이 정녕 국민에게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인금이 도매금인 저들이기에 “어리석은 국민 여러분~”으로 읽히지는 않는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탁 치니 억' 거짓말 경찰 감싼 김순호…행안부 “경질 당장 어려워”>, <'김건희 논문 그냥 덮자'…국민대교수 61% '왜'?>라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기사가 뜬다. 목불인견이 따로 없다. “옛날 전제군주 명령은 '너희들은 이걸 해서는 안 된다'였다. 전체주의 명령은 '너희들은 이걸 하라'였다. 우리의 명령은 '너희들은 이미 그렇게 돼 있다'는 거야.” 조지오웰의 <1984>에 보이는 문장이다. '너희들은 이미 그렇게 돼 있다'는 말은 부조리에 마취되어 진실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빼앗겨 의식이 마비된 '생물학적 인간'일뿐이다. 마치 '돌을 던지면 사자는 돌 던진 사람을 물지만[獅子咬人] 개는 돌만 쫓아가 듯[韓盧逐塊]'. 이런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 바로 암울한 미래인 디스토피아(dystopia)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에서 백성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선생은 저런 자들에게 분노를 표현해야한다고 말한다. 황해도 곡산에 사는 농민 이계심이 세금 징수가 과하자 백성 1천 명을 이끌고 관가에 쳐들어갔을 때 일이다. 선생은 도망갔다 제 발로 찾아 온 이계심을 석방해 버린다. 그러며 이계심은 “본성이 백성의 폐단을 말하기 좋아하였다(喜談民瘼)”하고 오히려 “너 같은 사람은 관에서 천금으로 사들여야 마땅하다(如汝者 官當以千金買之也)”고까지 하였다. 선생은 “관리가 밝지 못한 이유(官所以不明者)”는 백성이 제 한 몸의 불이익을 생각하여 관에 대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결국 이계심의 저 말은 '분노하라! 그래야 세상은 변한다'이다. '분노'는 부정어가 아닌 강한 긍정어가 되어야 마땅하다. 저 시절에도 저러한 서늘한 말을 하였다.

지난 시절 백성이 좋은 이를 뽑아 나라에서 벼슬 준 이를 대부(大夫)라 하였다. 국회의원의 별칭으로 부르는 선량(選良)은 이 대부에서 왔다. '대부'란 나랏일을 크게 부축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육덕[六德, 지(智)·인(仁)·성(聖)·의(義)·충(忠)·화(和)]과 육행[六行, 효(孝)·우(友)·목(睦)·인(姻)·임(任)·휼(恤)]'을 갖춘 자를 말한다. '선량'이 그야말로 '개발에 편자'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격'이 안 되게 하려면 국민들이 '저 귀접스런 행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분노해야만 세상은 변하기 때문이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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