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

2021. 10. 26. 10:55간호윤 책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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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

 

내 공부가 짧아서인지 모르지만, 배울 만큼 배운 박사니, 교수니하는 분들, 물질에 영예에 위선을 동무 삼고, 더하여 네 편 내편을 갈라 서로 바라보지도 못하게 높다랗게 담벼락을 쌓아놓았더군요. 나보다 학문적 내공으로 보나 인생으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열 하고도 몇 뼘은 더 올라갈 분들이기에 한동안은 참 고민하였습니다.

당신들이 써 놓은 그 아우라(Aura) 넘치는 글귀들, 하느님 버금가는 놓치기 아까운 말씀들, 그래 눈 맛에 귀맛까지 여간 아닌 그 글과 행동이 영 각 따로이니 심심할 뿐입니다. 세상의 풍화작용에 저 이들의 고담준론(高談峻論)이 맥없이 스러지는 것을 목도함은 뒤늦게 공부의 길로 들어선 나에겐 더없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書自書我自'라는 말을 알고는 고민에서 배추꼬리만큼 벗어났습니다. 그것만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몇 해 전부터는 인문학의 위기란 말이 돌더군요. 요령부득이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 삶의 근간인 인문학이 부고장을 돌릴 판이니 "살려달라!"는 절규 아닌지요. 한때 인문학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우리네 삶의 구원군 역할을 하던 시절이 있었지마는 이미 과거지사입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인문학이나 인문학하는 사람

을 더 이상 우리 사회의 해방군으로 보지 않습니다. 아니, 이제는 인문학자들의 자조(自開)와 자긍(自矜)의 자웅동체 용어 '남산골샌님' 조차도 웃음가마리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래, 내가 보기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교조적 지식의 마당쇠를 자임하고 나선 인문학자들이 더 이상 할 소리는 아예 아니라 생각합니다. 인문학의 위기를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은 개도 웃을 일이지요.

'망진자(亡者)는 호야(胡也)’ 아니던가요.

'망진자(亡者)는 호야(胡也)’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 ‘진(秦)나라를 망하게 할 자 호(胡,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서 변방을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진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오랑캐가 아니라 그의 아들 호해(胡亥)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