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웃을 일>

2018. 5. 8. 16:17글쓰기/글쓰기는 연애이다

<개도 웃을 일>
 
넘어져도 2주는 나온다. '법 앞에 누구나 평등' 그야말로 개가 웃을 일이다. 이 나라 국민으로 사는 것 참 힘들다. 2018-05-07 21:56:59
 
김성태 폭행범 구속법원 "도주 염려 있다" 영장 신속 발부’라는 인터넷 기사에 내가 단 댓글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폭력은 안 된다는 말을 모를 리 없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을 비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혹 읽는 이들이 오해 없기를 바란다. 폭력 운운은 결코 안 될 일이라는 것쯤은 나도 아니, 이를 운운하는 댓글은 정중히 사양한다.)

그러나’, ‘그러나라는 역접사를 이렇게 써야 할 때가 있다. 김성태 폭행범 구속 사유가 서울남부지검 형사 4부(신영식 부장검사)는 전날 정치인을 폭행해 상해를 가하는 등 사안이 중하다상해·폭행·건조물 침입 혐의로 김 씨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였다. ‘정치인을 구타해서 구속했다는 뜻이다.

요즈음 저 김성태 씨를 비롯한 홍준표 씨 등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의 속을 뒤집어 놓는 발언을 예사로 해댄다. 문제는 저들의 말과 행동이 사사건건 국가의 미래를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저들의 저러한 행동에서 읽히는 문장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누리던 온갖 혜택을 지키려는 아주 못된 행동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욱이 일상화된 막말은 국회의원으로서 품격도, 국민에 대한 대의기관으로서 예의조차 없었다. 국민을 섬긴다는 국회의원으로서 자질부터가 의심스럽다.
정치를 공자는 바를 정()’ 한 자로 푼다. 바른 마음으로 나라 생각하고 바른 마음으로 국민 섬기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저 이들에게서는 이러한 바름한 자를 찾을 수 없다. 인간으로서 기본인 예의와 염치조차 찾기 힘들다.

이 글을 쓰는 나, 비록 글쓰기와 선생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 지나지 않지만 개, 돼지는 아니다. 기쁘고 슬프고 즐거움과 노여움을 느낄 줄 아는 존엄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래 대한민국인임을 증명하는 내 가족관계증명서는 말귀를 못알아듣는 축산물이력서가 아님이 명백하다. 그러하거늘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이, 국민의 공복(公僕)을 자임한 저들이, 왜 자신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고 권한을 위임한  국민들에게 자괴감과 무력감을 주는가? 어떻게 수 천 만 국민을 한낱 개, 돼지처럼 여기는가?

그런 저 이의 단식농성장에 찾아가 주먹으로 한 대 친 젊은이가 구속되었다. 구속된 저 젊은이와 내가 다른 점은 실행을 했고 못 했고의 차이일 뿐이다. 차이를 또 해석하면 개인의 일탈이 공권력의 일탈에 가한 응징이다. 죄로 따지자면 개인의 일탈과 공권력의 일탈 중 누구의 죄가 더 큰가. 저 이들의 행동을 가만 보자면 구타유발자들 아닌가. 그런데 또 다른 공권력은 저 젊은이를 구속시켰다. ‘정치인이라는 공권력에 대들어서라고 한다. 이 잣대를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적용시킨다면 구치소를 오호 담당제만큼이나 두어야할지 모르겠다.
법 앞에 누구나 평등그야말로 개가 웃을 일이다.(이 글을 쓰는데 저 이의 단식중단 예고 뉴스가 뜬다. 한 나라 야당 당수로서 목숨 걸고 단식한다던 이가 겨우 닷새 만에---개가웃을 일에서 나아가 개도웃을 일이다.)
    
글쓰기는 천상에서 겨자씨 뿌려 지상 바늘귀에 꽂는 비기가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렇다면 인정물태, 글은 곧 그 사람(文如其人)이니 빗방울처럼 많은 사람, 눈발처럼 쏟아지는 저들의 세상 이야기를 손등에 푸른 정맥이 솟도록 쓰면 우박처럼 자음과 모음이 쏟아질까? 아니다. 가슴이 두방망이질하는 글이 되려면 인정물태를 제대로 써야 한다.
인정물태를 넷으로 나누면 이렇다. 알 필요도 쓸 필요도 있는 인정물태, 알 필요 있지만 쓸 필요 없는 인정물태, 알 필요 없지만 쓸 필요 있는 인정물태, 알 필요도 쓸 필요도 없는 인정물태가 그것이다. 글 쓰는 자라면 마땅히 알 필요 없지만 쓸 필요 있는 인정물태알 필요도 쓸 필요도 있는 인정물태를 찾아야 한다. 이 두 인정물태를 쓴 글이라야 저 시절 글을 이 시절에 읽는 유통기한 없는 글이 된다.(간호윤,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한국경제신문i, 2017, 133)

연암과 다산 선생이 작금의 이 일을 보면 어떻게 글을 쓰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