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방- 통- 행’

2016. 10. 6. 10:57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누구나 다르지만, 누구나 같은>
    
휴휴헌 창틈으로 차 소리가 들린다. 그만큼 오랜만인가보다. 책상에 앉았으되 글 한 자 제대로 쓸 시간이 없었다.
    
몇 개월 동안 꽤나 분주하였다. 『연암소설집』(새물결), 『송순기 문학 연구』(보고사), 『사이비』(작가와 비평) 등이 연달아 출간되었다. 여기에 개학과 동시 여러 군데의 강의에 어머니 입원까지. 실속(?)은 없지만 꽤 분주한 일상으로 언필칭 공사다망(公私多忙)이었다.
    
“이기동 원장님이 국가에 얼마나 필요한 분인데, 그런 분을 욕하니 내가 말 안하게 생겼어!---당연히 국사교과서는 국가가 책임져야지.”
    
내 강의를 듣던 한 남자분의 말씀이다.
    
어제, 인천 서구도서관(강좌명: <길 위의 인문학>, 내용: 한국 고소설에 담긴 선과 악의 대립, 가족의 갈등, 그리움 등을 다시 읽고 현재의 삶에 대한 사유와 통찰하기)에서 일이다. 내 전공은 고소설이다. 고소설 대부분이 ‘권선징악’(모든 세계 소설은 다 권선징악이다.)이란 결말도 좋고 김현이 『분석과 해석』에서 한 “이 세계는 과연 살만한 세상인가?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다.”라는 말은 가슴에 와 안긴다. 
어제는 작가론 중 연암 박지원 선생이었다. 이야기 줄기는 자연히 현재의 국학 분야로까지 흘렀다. 현재 그 국학을 책임지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인 이기동이란 분의 작금 행동에 대해 한 마디 안 할 수 없었다.
연세가 꽤 지긋한 부부인 듯한 분으로 첫 시간부터 나란히 앉으신 분이다. 남자 분의 저 말씀에 여자 분이 말씀하셨다.
    
“저도 교사 출신입니다. 교수님! 국어와 국사는 당연히 국가에서 만들어야하지 않습니까.”(물음표가 아닌 마침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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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남자 분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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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북한이 잘못한다는 말은 안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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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남자 분이 말하였다.
“50대가 뭘 압니까? 배고픈 걸 아나요. 우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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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자, 다시 연암 박지원 선생으로 돌아가겠습니다.”
    
2016년 10월 5일 밤 9시가 넘었다. 피곤했다. 서둘러  인천 가좌동 경인고속도로 옆, 좁은 길로 들어섰다. 가로등이 너무  희미했다. 문득 내 머리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와 같이 저 분들도 생각하기를, 저분들은 저분들처럼 내가 생각하기를’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누구나 다르지만, 누구나 같아야 한다. 누구나 다르지만, 누구나 같아야 한다.…이 나라에서는---. ”

갑자기 희미한 가로등 밑 어둠이 짙은 포도(鋪道)에 써 놓은 넉 자가 차 밑으로 휙휙 지나갔다. 아까부터 거기엔 넉 자가 그렇게 선명히 써 있었다.
‘일- 방- 통-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