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을 폐(閉) 자를 알고도 닫을 줄 모른다’

2013. 2. 20. 20:43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닫을 폐() 자를 알고도 닫을 줄 모른다

 

잠시 일상을 벗어난, 사흘 뒤-,

차디찬 유리를 격하여 저쪽에 정강이 뼈 두어 개와 자잘한 뼛조각들이 칠성판에 누워있다. 화장(火葬)을 잡순 빙부(聘父)의 몸체다.

육신의 모습을 벗으니 눈도, 코도, 입도, 귀도모두 없다. 아마도 그것은 온전한 육신을 땅에 묻는다한들 동일한 귀결이리라. 시간이 흐르며 육신은 썩어 백골로 되고, 다시 진토로 되어, 끝내는 허허롭게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가 되고만다.

문득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란 영화가 떠오른다. 그 영화에서 노승은 닫을 폐()’자를 쓴 창호지를 눈 코 입에 붙인 채 이승을 하직한다. 이제 인간으로서 욕망의 문을 닫는 것이니 욕망으로 인한 고통도 마감하는 것이요, 인간으로서 삶도 마감한다는 의미이리라. 인간이란 욕망의 존재이고 욕망은 몸의 문인 눈, , , ,으로 들어와 그렇게 삶의 고통을 준다.

삼우재를 마치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다. 논문도 내야하고, 책도 써야하고, 수업준비도 해야 하고, 찾아 준 걸음마다 답례 글도 보내야하고,분주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 또한 그득한 욕망이란 생각이 든다.

빙부의 수습한 유골에서 허허로움을 보았거늘, 또 다시 불길처럼 솟는 어리석은 인간의 욕망이요, 뒤따르는 고통이다. ‘논어를 읽고도 논어를 모른다는 말이 있다던데, 이야말로 닫을 폐() 자를 알고도 닫을 줄 모른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게 이승에서 끝내 보아야할 내 모습이겠지만 허허로움이 채 이틀을 넘기지 못하는 내가 못내 섭섭하여 몇 자 적바림해둔다.

2013220, 빙부의 삼우제를 치른 날, 휴휴헌에서 휴헌 간호윤 삼가 몇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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