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16. 13:33ㆍ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간 선생 외출기(1)
4-5년은 자료를 모았건만 깜냥도 적공도 모자라선지 <고소설도의 목록화와 문화접변 연구>라는 꼴이 되지 않은 녀석을 들고 한양대에서 하는 학회를 찾았다. 학회에 나가야 그저 그런 말이나 오가고 고담준론도 마뜩치 않았다. 그래 그런 저런 이유로 학회와 교제를 끊은 지 5년 만이다. 학회 주제는 <고전문학의 재미, 흥미, 의미>였고, 학회가 끝날 즈음에 내가 이런 말을 하였다.
“의미는 있습니다만 재미와 흥미는 좀… 발표자께서 ‘체험의 연출’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대학로에서 이러한 학회를 열면 안 되겠는지요. 고소설이야 사실 저 대중들 것 아닌지요. 우리들만의 리그를 하는 것 같아…‘서사놀이’니 ‘전통콘텐츠의 발굴’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고소설에 <산대놀이>, <무당놀이>, <춘향이놀이>, <글자풀이요> 등 고소설관련 놀이가 좀 많습니까. 그렇다면 그야말로 재미와 흥이 있는 발표장이 되지 않겠는지요.”
내 말만 귀양 보내는 셈치고 한 말이지만 유학자요 의병장 안방준(安邦俊,1573~1654) 선생의 <구잠(口箴, 입을 경계함)>이란 시가 불현 듯 스쳤다.
言而言 말 해야 할 때 말하고,
不言而不言 말해서 안 될 때 말하지 말고,
言而不言不可 말해야 할 때 말 안 하면 안 되고,
不言而言亦不可 말해서 안 될 때 말해서도 안 된다.
口乎口乎 입아! 입아!
如是而已 이렇게만 해다오.
늘 외우고 다니는 말이건만 하필이면 이때 잊을 건 뭐람. 하기야 논문과 교제를 끊은 지 5년 여 만이니 학회도 그만큼 안 나왔을 테고 현실감이 떨어 질만도 하다. 그래, 저녁에 정릉 사시는 중산 선생님 문하생이 모이는 날이라 가기로 했건만 학회가 끝난 뒤 뒤풀이에 따라 붙었다. 그냥가자니 내가 한 말이 저 차가운 강의실에 잔뜩 옹크리고 앉아 영 섭섭할 듯해서다. 고명딸 졸업식도 참석 못하고 온 학회 아닌가. 반기는 사람 없건만 1차는 소주에, 2차는 맥주까지 먹었다. 취기가 오르자 ‘이키나! 가스통 바슐라르의 몽상기법 이야기 안 한 게 어디야’하는 생각이 든다.
전화를 걸어보니 정릉의 선생님께서도 자리를 옮기셨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정릉으로 간다.
'삶(각종 수업 자료)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닫을 폐(閉) 자를 알고도 닫을 줄 모른다’ (0) | 2013.02.20 |
---|---|
간 선생 외출기(2) (0) | 2013.02.16 |
2012년 12월 31일 서재에서 (0) | 2013.01.02 |
<도올의 혁세격문> (0) | 2012.12.19 |
짝!, 그리고 돈! (0) | 2012.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