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출판인의 죽음을 곡하며
2012. 7. 18. 13:54ㆍ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어느 출판인의 죽음을 곡하며
일찌감치 망자(亡者)가 잠시 머무는 장례식장을 찾았다. 썰렁했다. 조화 네 개만이 그의 51년의 삶을 대변했다. 출판인임에도 출판인이 보낸 조화는 없었다. 영정에서 망자는 변함없는 얼굴로 빙그레 웃고 있었다.
“예, 교수님. 그래야지요.” 내가 “내 책 언제 내줄 거요?”라고하면 늘 망자는 저렇게 답했다. 망자는 나에게 깍듯이 존칭어를 썼다. 아마 모두에게 그랬을 것이다.
내 책 ≪종로를 메운 것이 모조리 황충일세≫는 망자가 만들어준 책이다. 벌써 6년 전이다. 책을 내며, “왜 이리 어렵게 글을 쓰지요. 좀 쉽게 풀어 주세요.”“더 이상 어떻게 글을 풉니까? 그렇게 하면 내 글이 없잖아요.” 티격태격 싸웠다. 망자는 꽤 근성 있는 출판인이었다.
결국 그는 새 출판사를 차렸고 수년래 e북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했다. e북 시장이 망자에게 출판의 꿈을 보여준 듯했지만 자본도 …모두 부족했다. 그래도 작년 겨울에 만난 망자의 음성은 꽤 역동적이었다.
이제 망자는 못다 이룬 e북 시장을 안고 영원히 잠들었다.
추적추적 장맛비를 따라 걷는다.
빗방울로 삶, 출판, 책, …, 그리고 ‘출판인 •방•진•국’이란 이름 석 자를 써본다.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빈다.
“방 선생! 저승에 가서 e북 시장 좀 잘 꾸려 놓으시오. 그리고 내 책도 좀 잘 꾸려주시오.”
2012년 7월 18일. 간호윤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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