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론, 오만과 편견(2)

2012. 2. 10. 18:15글쓰기/글쓰기는 연애이다

재벌 개혁론, 오만과 편견(2)

며칠 전, ‘재벌 개혁론, 오만과 편견이란 글을 써 놓고 보니 연암의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가 생각난다.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백성들의 명전(名田, 백성들이 소유할 수 있는 토지)을 제한하자는 말이다.

연암 선생의 말이 참 무섭다. 다섯 개의 촉수로 만족이란 두 글자를 모르며 포식을 즐기는 불가사리형족벌 경영자들은 꼭 일독했으면 좋겠다.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에 자세히 기록해 놓았지만, 내가 벼슬살이 하였던 면천군의 경우 평균적으로 다섯 명 식구 한 호당 39125되의 곡식을 거둔다. 그 중에서 조세로 72, 곡식 종자로 497되를 떼 놓으면 33108되지만, 도지세로 반절을 떼면 10분의 6이 나가는 셈이다. 15섬 조금 넘는 곡식으로 소를 키우고, 소금을 사고, 옷감을 마련하고, 시집장가 보내고,자연재해 등을 만나면 그야말로 소금 값조차 남지 않는다. 죽도록 한 해 농사를 지어도 소금 값도 안 남는다.’라는 속담은 이래서 나왔다. 그러니 무엇으로 부모와 처자를 양육할 것인가? 빚을 지다 끝내는 가진 땅을 싸게 팔 수 밖에 없고 끝내 유리걸식하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우리 조선의 농투성이들이다.

나는 이 원인을 겸병(兼倂)에서 찾는다. 조선의 세제는 공물을 미곡으로 통일하여 바치게 하는

대동법(大同法)이다. 이 부세제도는 무신년(1608, 광해군 즉위)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어 지금은 전국적으로 이를 집행한다. 문제는 대동법에서 허용하는 겸병이다. 지금 시행되는 겸병제도는 남의 토지를 빼앗아 차지하는 것을 얼마든 허용한다. 따라서 빼앗지 않고는 만족 못하는 그야말로 귀척(貴戚)의 두목과 겸병(兼倂)의 괴수들을 만들어 댄다. 부익부 빈익빈은 겸병을 방임하는 법의 결함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 조정에서 여러 자잘한 방법을 강구하나 그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미봉책이나 인순고식에 지나지 않는다. 방법은 동중서(董仲舒)가 무제에게 건의한 백성들의 토지를 제한하는 한민명전(限民名田)에서 찾으면 된다. 한민명전은 백성들 모두 명전을 30() 이상 소유하지 못하고 기한을 3년으로 제한하여 이를 어길 시 재산을 몰수하는 법이다. 시행은 어느 해, 어느 날을 기점으로 법령을 공표하면 된다.

토지 소유를 제한한 후라야 겸병한 자가 없어지고, 겸병한 자가 없어진 후라야 산업이 균등하게 되고, 산업이 균등하게 된 후라야 백성들의 삶이 안정되어 각기 제 토지를 경작하게 되고, 근면한 사람과 나태한 사람의 구별이 드러나게 된다. 근면한 사람과 나태한 사람의 구별이 드러나게 된 후라야 농사를 권면할 수가 있고 백성들을 가르칠 수가 있다. 비유하자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물감이 갖추어져 있고 그림 솜씨도 뛰어나다 하더라도 종이나 깁과 같은 바탕이 되는 것이 없으면 붓을 댈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 법을 실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천하의 땅이 모두 왕의 땅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한 <한민명전의>를 지어 금상께 바친 것은 이 나라 선비로서의 마땅한 책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