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 가금면 ‘한국한글박물관’을 찾아서(1)

2011. 2. 10. 15:12포스트 저서/속화가 된 고소설

 

 

<탄금대 송림의 낙조>

 

그림이 된 고소설 2. 충북 충주 가금면 미도박물관을 찾아서

1

고맙소. 자네 덕에 좋은 하루였네. 차 시간도 430분이니 좋고. 부천 오면 연락 주시게.”

 

충주 시외버스터미널에 앉아 미도박물관 김상석 관장에게 더듬거리며 문자를 보냈다. 한국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http://www.hgnara.net/))은 나와 갑장 [甲長] 이기에 허여하는 사이다. 김 관장의 넉넉한 베풂은 끝까지 이어져 나를 이곳 터미널까지 배웅해 주었다. 짧은 하루지만 한국한글박물관을 찾아 정다운 분네를 만나고 많은 것을 얻었다. 탄금대를 못 본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고소설도를 찾는 두 번째 여행이 이만하면 대풍이기에 훗날을 기약하는 예매쯤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한겨울 저물녘 버스 대합실은 뜨내기손님 몇을 배웅하고 맞아서인지 고즈넉하고도 쓸쓸하지만 올 때처럼 서름치는 않다. 20여 분 남은 차 시간도 기다릴 만하였다. 여행 안내소가 있기에 관광지 안내문 몇 개를 챙겨서는

가방에 넣고 출구 앞 의자에 앉았다. 냉한 간이 의자지만 내 체온에 덥혀지니 느긋이 몸을 맡길만하다. 몸이 나른해지고 까무룩 든 잠을 한 여인이 깨웠다.

 

“430, 430, 부천행 버스는 사고 관계로 결항하겠사오니……

모든 일이 순조롭더니, 좀 난감하다. 얼른 행장을 수습하여 창구에 물어 보니 다음 차는 550분이란다. 1시간 하고도 20분이나. 되돌아선 김 관장을 부르기도 그렇고 하여 서성거리다가 아까 본 여행 안내소를 찾았다. 구면이 되어버린 안내소 여인은 탄금대를 가보시라고 수줍게 권한다.

탄금대 [彈琴臺] 는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데 달천이라고도 불린다.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강이 속리산에서 시작하여 탄금대 합수머리에서 한강의 본류인 남한강으로 흘러들어서이다. 버스를 기다리다 시간을 허비하여 바삐 걸음을 떼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20분 남짓 거리이다.

탄금대는 야트막한 야산에 위치하였다. 우륵(于勒)가야금을 연주하던 대가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송림이 빼어난데다가 남한강이 휘감아 돌아 경치가 뛰어나다. 여기에 애달픈 임란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요, 내 전공까지 잇대다보니, 이제는 버스 사고와 결항이 예사롭지만은 않다. 더욱이 작년에 출간한 내 책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2010, 김영사)<달천몽유록><임장군전>(<임경업전>)은 모두 이곳과 관련 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가 이 또한 아닌가.

<달천몽유록(㺚川夢遊錄)>1592년 임란 때 충주 탄금대 전투를 소재로 한 윤계선(尹繼善,1577~1604)의 한문소설이다. 탄금대 전투란 임진왜란 때 무장 신립(申砬)8,0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탄금대와 달천에 배수진을 치고 왜적과 맞섰으나 대패하여 신립 또한 강물에 투신 자결한 우리 역사의 비극을 말한다. 이로부터 8년 뒤에 윤계선이 곡성이 사무친 이 달천 전쟁터를 찾아 죽은 군사를 위로하여 쓴 소설이 바로 <달천몽유록>이다.

버스를 내린 한 무리의 등산복차림 여행객들이 깔깔, 호호 걷는다. 모두 50-60대쯤으로 보이는데 남녀의 수작이 그렇고, 남자들의 호기로운 말소리에는 술기운이 얹혔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게 선 여인상앞에선 만져보라느니, 만졌다느니달천과 조각상만큼이나 엇박자 소리다.

등산복 남녀와 내가 걷는 이 글을 윤계선 역시 걸었다. <달천몽유록>에서 윤계선은 백골이 그대로 널려 있는 탄금대의 비극적 정경을 이렇게 적바림했다.

 

어느덧 삼월,

봄바람 부는 달천엔 맑은 물결 이는데,

덤불 속에 해골들이 허옇게 널려 있고,

향기롭고 꽃다운 풀만 푸르고푸르구나.”

 

저 시절 목숨을 건 줄달음과 곡성(哭聲)이 저렇게 놓였거늘, 등산복 남녀들은 아는가? 아니 나는 아는가? 생각해보니 이 달천에는 <임경업전>의 비운의 주인공, 임경업을 모신 충렬사(忠烈祠)가 있거늘 보지 못한다. 봄바람이 불면 미도박물관 김 관장도 볼 겸 다시 한 번 이곳을 찾아야겠다.

송림(松林)으로 붉은 낙조가 들고 야박한 시간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겨우 충혼비를 보고서는 부랴부랴 발걸음을 돌렸다. 몇 차선인가. 걷거니 뛰거니, 잘 뚫린 해거름의 탄금로에 바람이 제법 차다. 땀이 등골을 지나고야 충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다시 들어섰다. 아침나절에 김 관장은 저만치서 나를 따듯이 반겨 주었다.

 

<탄금대 충혼비>

 

 

 

 

 

 

<탄금대 여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