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화를 곡하노라.

2009. 7. 6. 10:18글쓰기/글쓰기는 연애이다

 

등산화를 곡하노라.

 

‘회자정리’, ‘만나는 것에는 이별이 있다’는 말이다.

 

‘大떨이’라는 플랜카드가 펄럭이는 매장을 들어섰다.

‘5000원’ 꽤 싸다. 10여만 원이 훨씬 넘는 몸값이 가문의 붕괴로 형편없다. 생김새도 앞이 뭉툭한 것이 되바라지지 않고 선뜻 눈에 비치는 맵시와 빛깔도 엷은 갈색으로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다. 다만 내 발 크기보다 정확이 20mm나 더 컸다. 285mm나 되는 등산화다. 그러고 보니 썰렁한 진열대 위에서 제 동무 다 팔리도록 혼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에 뭉툭한 앞모양까지 더하니 좀 멍청스럽다.

 

그때 만해도 나는 등산을 다니지 않았다.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며 매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대로 있었다. 누군가 만졌는지 한 짝이 뉘어져 있을 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북적거렸지만 285mm나 되는 등산화에는 누구하나 관심을 두지 않는 눈치였다. 다시 한 번 들어 보았다. 생김새하며 색깔은 처음보다 더 맘에 든다.

 

들고 나가 값을 치렀다.

그렇게 내 집으로 와 신발장 맨 위에서 한 두 해를 보냈다. 하기야 사 올 때부터 등산화 체면은 구겨진 셈이었기에 등산화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도 없었을 것이었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다. 내 삶이라고 그 세상을 벗어날 수는 없다. 가장 큰 어려움은 어제의 꿈이 오늘 사라졌을 때다. 사람들은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을 때 또 달리 변화한다. 동물적인 적응인지도 모른다.

 

북한산을 오르던 그 날, 등산화는 신발장 속에서 비로소 나왔다. 등산화는 내 발에 의외로 잘 맞았다. 녀석은 나와 함께 꿈이 사라진 오늘을 걸었다. 때로는 산길을, 때로는 들길을…. 새로운 꿈을 찾을 때까지, 그리고 그 후도…, 어제까지.

10여 년을 그렇게 나와 함께 들을, 산을, 때로는 제 주인의 조상묘 벌초할 때도 함께했다. 녀석이 내 발을 불편하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제 모습은 조금씩 잃어갔다. 뒤꿈치가 닳고 빛깔도 변색이 되었다. 앞부리는 더 뭉툭해졌다. 넙데데한 것이 신발끈을 잔뜩 조여도 태는 영 나지 않았다.

 

그래 두해 전에 새 등산화를 샀다. 푸르스름하니 때깔도 좋고 몸매도 날렵하다.

하지만 새 등산화는 영 발이 불편하였고, 어제도 녀석은 내 발을 감싸고 처음 북한산을 오르던 날처럼 산을 올랐다.

잠시 한 눈을 팔다가 오른쪽 앞부리를 돌에 채였다. 발이 찡하니 무언가 이상하다. 내려올 때 드디어 앞코가 터지더니, 채 몇 발자국을 못가 발가락이 녀석의 몸 밖으로 내밀었다.

 

사람 사는 세상 ‘만남에는 이별이 있다’라고 했던가. 너 역시 사람과 함께 살았기에 ‘만남’을 가졌고 이제 ‘이별’을 고하는가보다. 다음 산을 오를 때부터 너는 나와 함께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 2009년 7월 6일, 휴헌이 너 등산화를 깨끗이 빨아 곡하며 두어 자 글로써 고하노라.

‘네 비록 물건이나 내 삶의 족적을 함께한 진정한 벗이었다네. 잘 가게나.’

 

2009. 7. 6.

휴헌 간호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