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청계산을 다녀와서/ <행복> 시낭송은 김춘경님입니다.

2009. 3. 9. 11:05글쓰기/글쓰기는 연애이다

출처 : 좋은글
글쓴이 : 한이 원글보기
메모 :

 

 

 

 

 

<청계산 매봉 표지석 뒤에 적혀있는 유치환의 ‘행복’>

 

 

 

“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시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되노라.”

 

어제 청계산을 오르다 본 매봉 표지석 뒤에 새겨놓은 유치환님의 시 <행복> 중 한 구절입니다. ‘행복하노라’가 아닌, ‘행복되노라’라는 시구가 참 시답습니다. ‘되노라’, ‘-되다’라는 바뀜을 나타내는 어간에 장중한 감동의 느낌을 주는 ‘-노라’라는 종결 어미를 합쳐놓았습니다. ‘머리 위에 항시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일겁니다.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행복>

 

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시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되노라

 

나중 죽어 서럽잖이 더욱 행복함은

하늘 푸른 고향의 그 등성이에

종시 묻히어 누웠을 수 있음이러라

 

 

청마 선생의 동명(同名) 시 <행복>이 또 있지요. 순수한 마음으로 푸른 하늘을 볼 줄 았았고,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다 생각했고, 사랑이란 두 글자에 인생을 걸었던 저 시절에 가끔씩 읊조리던 <행복>입니다. 군대 후배 녀석이 까만 밤하늘 반짝이는 별빛 아래 보초를 설 때면 내 귓가에 가만히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런 날이면 혹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을 담은 우편물이 올까?’ 내심 기다리기도 했지요.

오늘 하루쯤은 이 글을 읽는 님들 창가에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고 '정다운 우편물 한통' 받았으면 합니다.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2009. 3.9.

휴헌 삼가 씀

'글쓰기 > 글쓰기는 연애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소에 단청 말라!  (0) 2009.04.27
산행  (0) 2009.03.14
후목(朽木)  (0) 2009.03.02
세상사는 이치  (0) 2009.02.15
토산과 석산  (0) 2009.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