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다윈이 아니고 크로포토킨일세.’

2009. 1. 14. 13:36글쓰기/이 세상은 사각의 정글이 아니다!

 

‘여보게, 다윈이 아니고 크로포토킨일세.’


엊그제 한 신문에 <탄생 200주년 기념/다윈이 돌아왔다>라는 제하의 시리즈를 보았다. ‘생존경쟁(生存競爭:struggle for existence)’의 태두로서 다윈에 대한 예우는 20포인트는 됨직한 검은 활자로 박힌 “경제는 균형이 아니라 진화”라는 타이틀기사에서도 알 수 있다. (아래쪽을 보니 무려 열 번하고도 한 번을 더 연재한단다. ‘(1) 21세기에 되살아나는 다윈’으로부터 시작하여 ‘(11)다윈과 의학’으로 맺는다고 되어있다.) 소제목은 ‘균형에 관한 헛된 믿음을 버려라’, ‘경제는 두려움 때문에 진화한다’ 등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경제와 연결시켰다. 기사의 한 부분이다.


    다윈은 변이와 선별, 이 두 가지 간단한 개념의 결합을 통해 진화의 메커니즘을 밝혔다. 비록 다윈은 자신의 개념을 생물의 진화에 적용하였지만 이 원리는 생물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 개념을 확장하면 세계의 보편적인 변화 원리가 될 수 있으며 경제에도 훌륭히 적용될 수 있다. 《부의 기원》(2007)을 쓴 바인하커(E. Beinhocker)는 진화야말로 "세계의 모든 질서, 복잡성, 그리고 다양성을 설명해 주는 공식"이라고 하였다.


다윈, 진화의 메커니즘으로서의 경쟁, 경제, 부를 한 동선으로 그린다. 아마도 21세기의 이 난세(亂世)의 비상구를 ‘생존경쟁’이론으로 찾자는 의도인 듯하다. 하지만 다윈 운운은 영 마뜩찮다. 자본주의 경제의 배필격인 ‘경쟁’이 다윈 이론의 핵심용어임을 모르는 바 아니나 다윈이론의 ‘경쟁’은 생물의 진화에 적용해서였다.

 더욱이 다윈의 ‘생존경쟁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이요, 가설’일 뿐이라는 점이다. 다윈이 1858년 런던 린네학회에서 진화론을 발표한 지, 그래 세계적으로 다윈추종자들을 만들어낸 지 반 세기쯤 러시아 출신 동물학자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1842~1921)는 다윈의 이론을 실증적으로 증명해 보려했다.

크로포트킨의 연구는 철저히 야생에서 시작되었다. 다윈의 이론처럼 생물이 과연 ‘동종 또는 이종동물과 끊임없이 경쟁을 통해 생존’을 하느냐를 규명할 심사였다. 크로포트킨은 개미, 꿀벌 등 작은 곤충에서부터 조류 등을 거쳐 인간으로 시선을 옮겨, 야만인․미개인․중세도시인․ 근대인까지 영역을 넓히며 철저한 실증적 작업을 한다. 연구는 첫 결과물을 1890년 내놓고도 10여 년 동안 계속된다. 그리고 13년 뒤인 1902년, 크로포토킨은 『만물은 서로 돕는다:A Factor of Evolution)』를 완성시킨다.

학계에서는 이 책에 실린 크로포토킨의 주장을 ‘상호부조론(相互扶助論)’이라고 부른다. ‘상호부조론’은 ‘사회 진화의 근본적인 동력이 개인들 사이의 자발적인 협동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이른바 ‘생존경쟁’으로 불리는 다위니즘과는 대척점에 선다. 크로포토킨의 연구에는 다윈이 주장한, 아니 실은 다윈주위자들이 주장한 것이겠지만(다윈은 항상 생존경쟁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동종간의 치열한 경쟁이 생존경쟁의 특징이자 진화의 주요인이란 결과가 없었다.

크로포토킨은 한 지역에서도 다윈의 이론을 입증하는 결과를 찾지 못하였다. 오히려 ‘격렬한 경쟁’,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등 새파란 냉기를 뒤덮은 시기에는 종의 진화가 없었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생존을 위해 벌이는 무자비한 싸움터는 오히려 공망(公亡) 뿐이라는 결과였다. 크로포토킨이 찾은 자연법칙은 상호투쟁이 아닌 ‘상호부조’였다. 서로 돕는 상호부조야말로 진화의 동력이요, 진정한 생존경쟁이었다. 크로포토킨은 『만물은 서로 돕는다』에 작은 곤충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찾은 예들을 낱낱이 적어 놓았다.

2008년의 어둠의 자락을 끌고 들어 선 2009년 1월이 중턱을 넘어선다. 자락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에서 어렵지 않게 ‘절망’, ‘좌절’, ‘암담’ 이란 부정적 용어를 듣는다. 그래, 아마도 저 신문에서는 이 고통을 벗고자 다위니즘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듯하다. 허나 야박한 ‘생존경쟁’으로 살 자가 몇이나 될 지 참 의문이다. 물론 저 신문이나 저러한 글을 쓰는 분네들이야 ‘경쟁’을 할수록 더욱 힘이 솟겠지만. 나는 생존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다.  

예로부터 우리는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도왔다. 향약, 두레는 어려움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상호부조의 정신을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저 IMF 때의 금모으기 또한 서로 도와주어야 생존한다는 상호부조의 실례가 아니겠는가.

 

삶에 겨운 친구 녀석이 있다. 열심히 사는데도 늘 생활이 도찐개찐이다. 엊그제 통화를 했는데 사는 게 아주 죽을 맛이란다. 오늘은 그 녀석을 불러내야겠다. 그래 소주 한잔 하며 이렇게 말하련다.


‘여보게, 다윈이 아니고 크로포토킨일세.’


이 글을 쓰는데 크로포토킨 지음, 김영범 옮김, 『만물은 서로 돕는다』, 르네상스, 2005를 참조하였다.

2009. 1. 14.

간호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