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그리고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2008. 9. 15. 12:04글쓰기/글쓰기는 연애이다

 

 

추석, 그리고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손목시계를 시골집에 그대로 두고 왔습니다. 어쩌다 행사가 되어버린 고향 방문엔 늘 있는 일입니다. 돌아설까하다가 시계는 집에 또 있고, 이미 읍내를 지났기에 그냥 올라가기로 하였습니다.


올해는 당일로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추석 연휴가 짧아서기도 하지만 집안에 혼인이 있어 차례를 모시지 않은 까닭도 있습니다. 집안 조카가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살이 빠졌다고 합니다. 가만 보니, 그의 얼굴 역시, 올 설보다는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름살도 더 늘은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짓궂은 면이 있지만 그는 어릴 적 꽤 개구쟁이였습니다.


그의 주름진 낯이 영매(靈媒:중개자)가 됩니다. 그와 나의 어릴 적입니다. 앞 산자락에서 유도풀을 뽑고, 여름이면 우리들의 풀장이 되었던 우물배미, 연을 날리던 불로산을 내달립니다. 불로산은 ‘늙지 않는 산’이란 뜻으로 내 나이 12살 까지는 우리 산이었습니다. 그래 난 불로산만 오르면 내가 대장인양 우쭐했습니다.… 이제는 앞 산 자락도 우물배미도, 불로산도 모두 없어졌습니다. 내 꼬마둥이 시절은 그렇게 나와 조카 이마의 주름살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시간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헬라어로 흘러가는 시간을 ‘크로노스’라 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카이로스’라 합니다. 풀자면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즉 현실을 ‘크로노스’라 하고 ‘카이로스’는 개인적으로 멈춰있는 의미 있는 시간, 즉 과거의 어떠한 공간입니다.


어릴 적 내 세계의 끝 읍내는 벌써 지나쳤습니다. ‘카이로스’에서 ‘크로노스’라는 공간을 넘어선지 오랩니다.

 

내 시계는 한동안 어머니와 있을 겁니다.


2008. 9. 14.

간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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