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품 글쓰기

2008. 8. 25. 16:14서울교대/실용작문(수3,4)-생활과학

수제품 글쓰기


글쓰기는 마땅히 수제품이어야 합니다.

수제품 구두는 단 한 켤레도 똑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 글은 사물의 모사(模寫)나 재현(再現)이 아닌 번역(飜譯)에 해당됩니다. 번역은 테크닉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내 글을 수제품으로 만들까요?

그것은 사물에 대한 관찰로부터 시작합니다. 관찰이란 보고 듣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감을 동원하여 사물을 관찰해야합니다. 오감을 동원한 사물 관찰이란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느껴야 새로운 사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물의 내밀한 진실은  눈에 보이거나 듣는 것으로부터 멀어진 그 은밀한 곳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책 읽기 또한 사물관찰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감을 동원하여 사물을 관찰하듯 책을 읽어야합니다. 책읽기가 없으면 쓰기도 없습니다. 책읽기는 글 쓰는 이의 협소한 경험적 공간을 무한 공간으로 안내합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비평가 이지(李贄, 1527-1602)의 동심설(童心說)은 우리의 사물관찰이나 책읽기에 많은 도움을 주는 글입니다. ‘동심설(童心說)’이란 ‘동심’ 즉 어린 아이의 마음이란 뜻입니다. 아이들의 사물에 대한 감각표현은 성인들보다 확장된 세계를 갖고 있습니다. 각종 문화와 제도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백색의 마음바탕을 그대로 갖고 있어서입니다.  

아래는 <동심설>이란 글의 일부입니다.


 童心說

용동산농龍洞山農이 《서상西廂》을 쓰며 끝에다 말하기를, "아는 이가 내가 여태도 동심童心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대저 동심이라는 것은 진심眞心이다. 만약 동심을 안 된다고 한다면 이는 진심을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대저 동심이라는 것은 거짓을 끊고 순수하게 참된 최초에 지녔던 한 생각의 본마음이다. 만약 동심을 잃게 된다면 진심을 잃는 것이고, 진심을 잃는다면 참된 사람을 잃는 것이다. 사람이 참되지 않으면 온전히 처음 상태를 회복하지 못한다.

동자童子라는 것은 사람의 처음이요, 동심童心이라는 것은 마음의 시작이니, 대저 마음의 처음을 어찌 잃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어찌하여 동심을 갑작스레 잃게 되는 것일까? 대개 그 처음에는 듣고 보는 것이 귀와 눈을 통해 들어와 그 마음에 주인이 됨으로써 동심을 잃고 만다. 자라서는 도리道理가 듣고 보는 것을 좇아 들어와 그 마음에 주인이 됨으로써 동심을 잃게 된다. 나중에 도리와 듣고 보는 것이 날마다 더욱 많아지게 되면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날마다 더 폭넓어져서, 이에 아름다운 이름이 좋아할만한 것임을 알게 되어 힘써 이름을 드날리고자하여 동심을 잃게 되고, 아름답지 않은 이름이 추함을 알아 힘써 이를 덮어 가리려 하는데서 동심을 잃게 된다.

대저 도리道理와 문견聞見이란 모두 독서를 많이 하여 의리義理를 아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옛날의 성인이 어찌 일찍이 독서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설령 독서하지 않았더라도 동심은 진실로 절로 남아 있었을 것이요, 독서를 많이 했다손 치더라도 또한 이 동심을 지켜 잃지 않도록 했을 따름이니, 배우는 자가 도리어 독서를 많이 하고 의리를 아는 것이 동심에 장애가 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저 배우는 자가 독서를 많이 하여 의리를 알게 되면 동심에는 걸림돌이 되나니, 성인이 또 어찌 저서著書와 입언立言을 많이 하여 배우는 사람에게 장애가 됨을 하겠는가? 동심이 막히고 보면 이에 있어 펼쳐 말을 해도, 언어가 마음 속으로부터 말미암지 않게 되고, 드러나 정사政事가 되더라도 근저가 없게 되며, 저술하여 문사文辭가 되어도 능히 통달하지 못하게 된다. 안으로 머금어 아름다움이 드러나지도 아니하고, 도탑고도 알차 광휘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한 구절의 유덕有德한 말을 구하려 해도 마침내 얻을 수가 없다. 왜 그럴까? 동심이 막히고 보면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문견聞見과 도리道理를 가지고 자신의 마음으로 삼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서양에서도 동일하다.

다이앤 애커먼이 지은 『감각의 박물학』에 소개된 다프네, 찰스 마우러의 『신생아의 세계』 일부를 옮겨보자.


“세계는 아기에게도 냄새를 풍긴다. 그러나 아기는 냄새를 코를 통해서만 지각하지 않는다. 아기는 냄새를 듣고, 냄새를 보고, 냄새를 느낀다. 아기의 세계는 코를 찌르는 향기, 강렬한 소리, 쓴맛 나는 소리, 단맛 나는 광경, 살을 누르는 시큼한 맛으로 뒤죽박죽인 세계다. 신생아의 세계로 들어간다면 자신이 환각을 일으키는 향기 속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지, 동심설

조앤 에릭슨, 박종성 옮김,『감각의 매혹』, 에코의 서재, 2008.   

다이앤 애커먼, 백영미 옮김,  『감각의 박물학』, 작가정신, 2004.


                                                                                      弟子 不必不如師오 師 不必賢於弟子라 <師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