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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적 질서가 붕괴하는 중세의 조선, 저 시절에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유학에 붙은 저승꽃을 하나씩 떼어 낸 연암……. 연암이 좋다. 약관 때부터 매서운 지조를 지닌 것이 좋고 자잘한 예법에 구애 받지 않은 것이 좋다. 꿈에서 보았다는 서까래만한 붓대에 써있는 ‘붓으로 오악을 누르리라’라는 글귀가 좋고 만년에 병풍에 낡은 관습이나 폐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당장의 편안함만을 취한다는 ‘인순고식’과 잘못된 일을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주선해서 구차스럽게 꾸며 맞춘다는 ‘구차미봉’이라 쓰고 ‘천하의 모든 일이 이 여덟 자 글자에서 잘못되었다’는 말씀이 좋고 ‘개는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다. 그렇지만 기르면 잡아먹지 않을 수 없으니 처음부터 기르지 않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씀이 좋다. 인순고식, 구차미봉이란 쓰고 ‘천하의 모든 일이 이 여덟 자 글자에서 잘못되었다’는 말씀이 좋고 ‘개는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다. 그렇지만 기르면 잡아먹지 않을 수 없으니 처음부터 기르지 않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씀이 좋다. 문체반정의 주동자라서 좋고 위선적인 무리와 소인배와 썩은 선비들을 나무란 것이 좋고 가난 내림하며 청빈한 생활이 좋고 자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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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적 질서가 붕괴하는 중세의 조선, 저 시절에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유학에 붙은 저승꽃을 하나씩 떼어 낸 연암……. 연암이 좋다. 약관 때부터 매서운 지조를 지닌 것이 좋고 자잘한 예법에 구애 받지 않은 것이 좋다. 꿈에서 보았다는 서까래만한 붓대에 써있는 ‘붓으로 오악을 누르리라’라는 글귀가 좋고 만년에 병풍에 낡은 관습이나 폐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당장의 편안함만을 취한다는 ‘인순고식’과 잘못된 일을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주선해서 구차스럽게 꾸며 맞춘다는 ‘구차미봉’이라 쓰고 ‘천하의 모든 일이 이 여덟 자 글자에서 잘못되었다’는 말씀이 좋고 ‘개는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다. 그렇지만 기르면 잡아먹지 않을 수 없으니 처음부터 기르지 않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씀이 좋다. 인순고식, 구차미봉이란 쓰고 ‘천하의 모든 일이 이 여덟 자 글자에서 잘못되었다’는 말씀이 좋고 ‘개는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다. 그렇지만 기르면 잡아먹지 않을 수 없으니 처음부터 기르지 않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씀이 좋다. 문체반정의 주동자라서 좋고 위선적인 무리와 소인배와 썩은 선비들을 나무란 것이 좋고 가난 내림하며 청빈한 생활이 좋고 자신을 스스로 삼류라 칭한 것이 좋다. 벗이 적어 좋고 나라 안의 명산을 두루 다녀 호연지기를 키운 것이 좋고 홍국영에 쫓기어 연암협으로 몸을 숨겼다 지었다는 연암이란 호가 좋고 양금(洋琴)을 세상에 알린 것이 좋고 안의 현감시절 중국의 제도를 모방하여 벽돌을 구워 관아의 낡은 창고를 헐어버리고 백척오동각, 하풍죽로당, 연상각 등의 정자와 누각을 지은 것이 좋다. -옮긴이
‘인문학의 위기’라 한다. 인문학은 사람의 학문이요, 생각의 학문이다. ‘재주 있는 글은 많지만 인문학이 죽어가는 이유는, 학문을 마음으로 한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생각과 사람이 제 각각이니, 인문학이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그래, 연안과 같은 학문의 사표가 필요한 시기이다. 연암은 글과 말과 행동이 하나였습니다. 행동과 실천이 따르지 않는 배움은 가치가 없습니다. 공부를 하는 이들만이라도 제발 저이를 표석으로 삼아 행동했으면 좋겠습니다. 머리로 공부했다 뽐내며, 가슴으로 사는 사람들을 이죽거리거나 야료부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여 연암의 글을 읽고 말라붙은 우정, 말라붙은 정의, 말라붙은 인정머리에 촐촐히 인정의 샘물, 정의의 샘물, 우정의 샘물이 흘렀으면 합니다. 연암 소설을 번역한 책이야 진작부터 있었다. 북한에선 홍기문, 남쪽에선 이가원, 임형택을 거쳐, 최근에는 신호열, 김명호에 의해 『열하일기』로 혹은 각 따로 번역이 되었으면서도 일반인이 녹록하게 접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글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저자는 이방의 외피만을 추수하는 '의양지학'과 '가벼운 읽을거리'가 우리 독서계를 평정하고, 여기에 연암의 문학 또한 '입시용'으로 가볍게, 혹은 '학자용'으로 무겁게만 읽히는 것을 보고, 연암소설을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듬성듬성 저자가 공부하며 느낀 목소리를 책 속에 스며 넣었다. 따라서 이 책은 독서자들에게 ‘볼거리’와 ‘읽을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아울러 제공하고 있다. 번역은 되도록 직역을 하되, 순후한 우리말로 옮겨 문학적 표현에 유의하였고, 국문학적 지식이 없는 현대인이나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 책의 특성 몇을 들자면 이렇다. ① 소설 속 인물들을 캐릭터에 맞게 그려 넣어, 고전에서 오는 독서자의 부담감을 누그러뜨리고자 하였다. ② 본문의 어려운 부분은 ‘덧글’을 넣어 독서자의 심층적 이해를 돕거나 고려하였다. ③ 각 소설의 끝에 ‘제○○○후’라는 형식의 소설 감상 비평을 넣어 독서자의 작품 이해를 도왔다. ④ 연암소설 12편, 모두를 옮기어 이름과 실상, 공히 『연암소설집』이라 부를 수 있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허생'은 일부만 알고 있는데, 이를 바로 잡아 ‘옥갑야화’ 전체 속에서 이해하도록 하였다. 일실된 두 작품도 여러 자료를 넣어 이해를 도왔다. ⑤ 원문의 표현에 유념하였다. 예를 들어 <양반전>에서 유명한, 양반 아낙의 통매를 보자. 이가원 선생님은 “에이구 양반, 이런 양반이야말로 한푼어치 값도 못 되는구료(?兩班 兩班不直一錢).”라고 번역하였고 대부분의 번역은 거의 이를 따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쯧쯧, 양반, 양반은커녕 일전(錢:한 냥의 십분의 일)어치도 안 되는 구랴.”라고 번역하였다. 아내의 말은 양반을 비아냥거리는 것이다. 두 번씩이나 ‘양반, 양반’이라한 것과 ‘일전’에 유의해야 한다. ‘일전’은 ‘냥’의 ‘십분의 일’밖에는 안 된다. 결국 두 번째 양반은 양반(兩班)이 아닌 ‘양반(兩半)’, 즉 ‘한 냥의 ½’이니 ‘5전’이라는 소리이다. 결국 양반은 5전은커녕 1전어치도 안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를 살리려면, “양반, 양반은커녕 일전(錢:한 냥의 십분의 일)어치도 안 되는 구랴.”가 더 정확하게 문맥을 고려한 것이다. | |